올해 초 시작된 주파수 경매 전쟁 속에 통신 3사 최고영자(CEO)의 지략싸움도 빛났다. 절대적인 승자도, 패자도 없는 가운데 3사 CEO 모두 경매에서 무난한 성적표를 거머쥐었다는 평가다.
이석채 KT 회장은 1.8㎓ 대역 광대역화에는 실패했지만 소비자 편익증진과 국가 IT산업 발전을 명분삼아 800㎒ 입찰로 선회하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29일 오전 서초 사옥에서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해 1.8㎓ 입찰참여 중단을 확정한 후 곧바로 광화문 사옥으로 이동, 기자들에게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KT가 1.8㎓를 확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만 입찰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 요금전가 우려 등을 감안해 입찰참여를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1.8㎓ 입찰참여 중단에 따라 확보한 재원을 클라우드 컴퓨팅, 콘텐츠, 중소기업 상생 등에 활용하여 국내 IT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800㎒ 신규 주파수를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는 실리는 물론이고 전체 시장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까지 확보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가난의 대물림’까지 언급하며 그토록 원하던 2.1㎓ 주파수를 최저가격에 확보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월말 주파수 경매안이 확정되기 전까지 공식석상에서 틈만나면 2.1㎓ 입찰에 LG유플러스가 단독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텔레콤, KT와 달리 글로벌 주파수 대역 2.1㎓를 갖지 못해 만년 3위 사업자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부회장은 내부 직원들의 사기저하 우려에도 ‘가난의 대물림’을 내세우며 2.1㎓ 확보에 매달렸다.
이 부회장은 2.1㎓ 단독 입찰이 확정되자 “가슴 아픈 숙원을 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쟁사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존재감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1조원에 달하는 주파수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새로운 주파수 대역 확보와 경쟁사 견제라는 성과를 얻었다. 하 사장은 변화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글로벌 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대역을 추가로 마련했다. KT가 자사보다 두 배 이상 빠른 LTE서비스로 앞서나가는 것도 차단했다. 이날 하 사장은 “LTE 주파수를 확보함에 따라 사업자간 공정한 환경이 조성되어 고객에게 보다 질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과열 경쟁에 대해서는 통신 3사 모두 우려를 표했다. 이 회장은 “(경매제 보완은) 통신사업자가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정부, 사업자, 언론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SK텔레콤 측도 “금번 경매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인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현 이통사 수익구조를 놓고볼 때 주파수 가격이 경쟁 속에 과도하게 오르는 것은 좋지 않다. 이통사로서는 수익은 정체되고 투자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