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억원(1억6000만달러) 뭉칫돈을 들인 IBM 주도의 차세대 슈퍼컴퓨터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세계 최고 성능의 컴퓨터 제조업체라는 IBM의 자부심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9일 IBM은 일리노이대학과 공동개발 중인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블루워터’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재정 및 기술 지원이 부담된다는 것이 발을 빼는 이유다. IBM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미국이 야심차게 추진해 온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블루워터’는 물거품이 될 위기까지 맞고 있다.
블루워터는 2008년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이 1초에 1000조번 연산 가능한 1페타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일리노이대학 내 전미슈퍼컴퓨터응용연구소(NCSA)가 IBM을 개발사로 선정했다. 4년간 3억달러(약 3300억원) 예산을 들여 연내 가동을 목표로 개발 중이었다.
NSF 측은 “IBM이 빠져 당초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며 “9월 중순 열릴 국립과학심의회의에서 프로젝트 지속 및 수정 여부가 확정된다”고 밝혔다. 일리노이대학과 NSF 측은 연구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AP통신과 PC월드 등은 연구 지속이 힘들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거액을 투자한 프로젝트에서 주요 파트너로 선정된 기업이 중도하차하는 사례는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딥블루’부터 ‘왓슨’까지 슈퍼컴퓨터 개발에 의욕을 보인 IBM이라는 점에서 이유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최우선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수익성 부족이다. IBM이 밝힌 중도하차 이유는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비용과 기술적 지원이 예상 외로 증가됐고 여러 가지 다른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기술자산 리서치 기업인 인비지니어링그룹의 릭 도허티 담당은 “IBM은 블루워터에 많은 자산을 쏟아 부었고, 향후 관련 기술을 판매해 투자를 회수하려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유닉스 프로세서인 ‘파워7’의 문제라는 추측도 나왔다. 당초 블루워터는 ‘파워7’ 4만개를 합쳐 놓은 성능으로 계획돼 있었다. 조안나 브로어 IBM 대변인은 이에 대해 “파워7 프로세서와는 상관이 없다”고 부인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만들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이 최근 공개한 ‘게이(京)’는 8.162페타플롭스 속도로 ‘블루워터’가 목표로 한 1페타플롭스의 8배 이상 연산속도를 자랑한다.
IBM은 현재 공식적인 발표 외에 프로젝트 중단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블루워터 프로젝트 중도 하차로 IBM은 NSF가 그간 지원한 3000만달러를 상환해야하며, 일리노이 대학은 IBM이 제공한 서버 등 장비를 돌려줘야 한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