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없으면, 과학성공도 없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11년 성실실패용인제도 심의결과

 김찬형 충북대 교수는 지난해 4월부터 의약학 분야에서 획기적 연구를 진행해왔다. 산소가 부족해질 때 신체에서 나오는 두 가지 물질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추측과 가설은 있었지만 실제 연구가 시도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다. 그러나 1년 넘게 공을 들였지만 연구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김 교수는 “당초 기대했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토대를 만들고 실험 틀도 마련했다”며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추가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교수가 정부 지원으로 진행한 연구프로젝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혁신적 ‘도전정신’과 성실한 연구수행 실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성공 밑거름이 되는 실패를 장려하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적용받는 첫 사례가 나왔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해 실시한 88개 모험연구 과제 가운데 1년 후 평가 결과, 실패로 분류된 의약학 2개, 생명과학 1개, 융합과학 1개 등 총 4개 프로젝트를 ‘성실실패’로 인정했다. 연구결과는 ‘실패’였지만, 그 과정은 ‘성실’했다는 것이다.

 중간평가 결과 단순히 ‘탈락’하는 것과 ‘성실실패’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평가에서 탈락하면 향후 몇 년간 정부 연구프로젝트를 신청(참여)할 수 없는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성실실패로 인정되면 이러한 제한이 사라진다. 책임을 묻지 않고 곧바로 또 다른 과제를 신청할 수 있다. 지난해 모험연구 88개 과제모집에 무려 363개 과제가 몰려 4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찬형 교수는 “일반 연구과제는 이미 80% 이상 연구가 진행된 프로젝트를 과제로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중간평가에서 탈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연구자들의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이 도전적이고 획기적 연구 과제를 제안하는 것은 엄두를 못 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통해 연구자들은 실패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연구자들의 무책임한 연구를 막을 수 있는 별도 심의장치도 마련했다. 연구재단은 학문 분야별 5인 내외의 전문가로 구성된 ‘성실실패 용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위원회는 1차연도 평가결과 탈락된 과제에 대해 토론평가를 실시해 성실실패 용인 여부를 세밀하게 심의한다. 무엇보다 △연구수행 성실성 △연구방법 적절성 △연구환경 변화가 연구에 미친 영향 △유사연구와 성과물 차이 등이 주요 평가기준이다. 동시에 연구사실 정보를 DB화해 반복적으로 연구에 실패하는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도 방지한다.

 오세정 연구재단 이사장은 “미국 NSF는 연구비를 수여(grant) 개념으로 창의적 연구과제와 아이디어에 지원하는 반면에 우리는 계약(contract) 개념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고 의도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제재를 가한다”며 “창의적 연구에 과감히 도전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노벨 과학상과 같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연구실패 지식도 연구결과의 일부’로 인정해 실패 정보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관리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연구재단은 올해 46개 모험연구 과제(상반기 28과제, 하반기 18과제)와 미래유망융합기술 파이어니어사업 등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더 많은 과제에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표>2011년 성실실패 용인제도 심의결과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