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 말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 예매를 하지 않은 야구팬들이 매표소의 매진 표지를 보고 발길을 돌리던 참이었다. 이때 한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서며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표 2장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4~5개 그룹 야구팬들이 이 여성에게 줄지어 카드 회원가입 신청서를 적어냈다.
#2. 도로, 지하철 곳곳에서 `신용불량자, 카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본 김 모씨(36)는 설마 하면서도 전화를 걸었다. "체크카드가 아닌 진짜 신용카드를 만들어주겠다"며 업자는 김씨를 꾀었다. 이후 김씨가 받은 신용카드는 자신의 예금에 질권 설정이 돼 있는 카드였다. 업자는 수수료로 30만원을 챙겨 갔다.
2003년 카드 대란을 겪은 지 8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신용카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야구장, 축구장에서부터 놀이공원, 마트, 일반 사무실까지 달콤한 조건을 내세운 신용카드 발급 권유가 넘쳐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수차례 카드 과열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카드 발급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발급된 신용카드는 1억1950만장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해 1000만장 가까이 급증했고 올해 들어 매달 100만장씩 늘어나는 추세다. 3월에는 총 123만3000장이 발급됐다.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말 기준 총 발급 카드 수 1억488만장을 1500만장이나 웃돌았다.
카드 발급 경쟁은 은행계나 전업계 카드사 구분이 없다. 3월 기준 은행계 카드는 8042만장, 전업계 카드는 3908만장이 발급됐다. 카드사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공격적으로 신규 카드고객 유치 전략을 벌인 결과다.
업계에 따르면 등록된 카드 모집인은 5만1249명. 2009년 3만5000명에 불과했으나 카드사 간 경쟁을 타고 급증하고 있다.
폭증하는 신용카드 발급은 8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은 가계신용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빚이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카드 할부결제 금액은 1년 새 10조원이 늘어난 76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72조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물론 현재 카드사의 자기자본비율, 연체율 등의 지표는 아직 카드 대란을 얘기할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카드 이용액을 나타내는 판매신용 잔액은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발급된 카드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언제든지 그만큼의 신용위험이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카드론`이 시한폭탄이다. 지난달 산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소득수준 하위 20% 가구는 평균 담보대출 538만원, 신용대출 349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카드론은 가구당 1706만원으로 의존도가 훨씬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 발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카드사들의 공격적 영업은 `폭주 기관차` 같다"며 "신용불량자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준다는 사기가 횡행하는 것도 과열 경쟁의 단면"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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