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온리원 부품소재를 향해 <2> 시스템 반도체 - 세계 선두 메모리 업계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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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메모리 산업이 시작된 지 올해로 만 28년을 맞이했다. 1990년대 후반 태동기를 거친 국내 팹리스 산업과 비교할 때 15년가량 앞서 출발한 국내 메모리 산업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끝에 글로벌 시장 선두권에 우뚝 섰다. 메모리 반도체는 최대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반도체 불모지에서 시작해 ‘땀과 눈물’로 얻은 값진 결과물이다.

 국내 메모리 업계는 20여년 전 미국 기업을 제치고 메모리 시장에서 위세를 떨쳤던 일본 기업들을 따돌린 데 이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온 대만 기업들과도 격차를 벌리고 있다. 특히 최근 불경기를 맞이한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점유율을 높이면서 선전을 벌이고 있다.

 치열한 경쟁 탓에 ‘레드오션’으로 분리됐던 메모리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수많은 경쟁기업을 물리치면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전문 인재 확보와 꾸준한 기술 선도, 후방 산업과의 협업 등이 깔려 있다.

 세계 시장에서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업계가 메모리 업계에서 배워야 할 노하우가 바로 이것이다.

 ◇기술 선점으로 시장 지배력 높여라=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면서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큰 폭의 영업 손실로 위기를 맞았다. 반면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점유율을 높이면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63%에 달한다. 전 세계 D램 반도체 10개 중 6개 이상이 우리 기업들이 만들어낸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 비결은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 척도인 미세공정으로의 빠른 전환을 꼽을 수 있다. 또, 시장 성장성을 염두에 둔 모바일과 서버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 기술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시장에서 빠른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에 이어 주요 시장을 겨냥한 ‘선택과 집중’이 성공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특히, 앞선 기술 개발을 통한 시장 주도권 확보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다. 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 특성상, 한번 뒤처지면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미세공정 부분에서 이미 국내 업체들은 당분간 외국 경쟁사들이 넘보기 힘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까지 D램에서 30나노급 비중을 절반 수준으로 늘리고 20나노급 이하 낸드플래시도 70%까지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하이닉스도 30나노급 D램 비중을 올해 말까지 4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고부가 D램 비중도 70%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발빠른 투자와 사업 확장으로 2분기 이후에도 해외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린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성과는 과감한 R&D에도 기인했지만 수천명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우리나라 고유의 ‘우리’ 문화도 한몫을 했다. 반도체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D램에서 밀려난 것과 중국이 메모리 사업을 못하는 이유는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개인적인 문화에 기인한다”며 “목표가 세워지면 수천명이 밤샘을 하며 목표를 향해가는 문화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메모리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천”이라고 지적했다.

 ◇인재 확보와 성과 중심 보상=국내 메모리반도체의 역사는 ‘핵심 인재’에서 출발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구상할 때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 과학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나섰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이닉스도 지난 1999년 시장 급락과 함께 몰아닥친 여러 위기 상황에서도 핵심 인력들이 이직 유혹을 뿌리치고 회사에 남아 빠른 시간 동안 기술 발전을 일궈냈다. 기술 중심의 반도체 기업은 연구개발 인력들이 회사 사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 인재 중심의 경영과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이닉스의 경우 전체 임직원 중 연구개발(R&D) 인력을 전체의 17%인 3850여명을 배치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인력이 배치돼 있는 제조 엔지니어링 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이다. 연구개발 인력은 석·박사 출신이 31.4%, 학사 출신이 63.7%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또 지난해 정기승진제를 폐지하고 인사 마일리지 제도를 적용하는 신인사제도를 국내 전자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자체 설문조사 결과, 신인사제도를 통해 임직원의 승진 스트레스를 크게 낮추는 데 일조를 했으며 회사에 대한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특히,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통해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와 역량에 따른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직급이 오르고 연봉이 늘어나는 연공서열 방식에서 탈피,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높은 성과를 나타낸 임직원이 표준 성과 대상자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났다.

 ◇제조 현장을 중시하라=메모리 반도체는 수백개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차질 없이 돌아가야 최종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단 한 개의 공정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생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지난 20여년간 여러 부침과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생산 경쟁력이다. 무엇보다 제조 공정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인력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들어 황사가 가장 극심했던 지난 3일, 하이닉스 이천 반도체 공장은 분주히 돌아갔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지난 1984년 세운 이천 반도체 공장은 외형을 비롯해 구식이지만 내부는 최첨단 반도체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진복을 갈아입고 에어 샤워실을 거쳐 들어선 생산 라인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대당 500억원을 호가하는 포토리소그래피 장비다. 머리 위로는 웨이퍼를 담은 통들이 레일을 따라 다음 공정으로 쉴 새 없이 이동했다. 첨단 장비들은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현장 직원들도 첨단 장비만큼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동 통로가 그리 넓지 않은 탓에 낯선 방문자들이 이동을 방해했으나 크게 개의치 않고 업무에 집중했다.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첨단 기술이나 장비, 규모가 아닌 현장 직원들의 태도였다. 차분하게 현장을 안내했던 직원은 방진복을 갈아입는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내보이며 “여기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이곳 라인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다시 “다른 공장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만 만들어진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쓰여 있었다.

 

 <특별취재팀> 팀장=서동규 차장 dkseo@etnews.co.kr, 서한 차장, 양종석기자, 윤건일 기자, 문보경기자, 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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