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삼성전자 임원과 애플 구매 담당자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애플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등 전자부품을 대량 구매하는 핵심 고객사다.
이 자리에서 애플 관계자는 삼성이 애플의 특허기술을 침해하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잽`을 던졌다. 이는 특허를 빌미로 제품 구매가를 낮추려는 압박용 카드라고 삼성 측은 판단했다. 이후에도 애플 측은 공식 행사장에서 삼성을 견제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뱉으며 삼성의 숨통을 조여왔다.
결국 특허소송으로 확산될 것으로 판단한 삼성전자는 IP(Intellectual Property)센터 내 특허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사전 대응에 나섰다.
지난 15일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권과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삼성전자가 애플에 맞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 같은 선제적 대응 움직임이 뒷받침된 결과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삼성 주요 계열사들이 글로벌 기업들의 전방위적인 특허소송 압박을 받고 있지만 최근 승전보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는 2004년부터 6년 넘게 이어져 온 미국 하니웰과의 LCD 기술 관련 특허침해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고 26일 밝혔다. 미국 법원이 1심과 2심에서 하니웰의 특허 침해 주장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최근 하니웰이 상고를 포기해 SMD 승소가 확정된 것.
이에 앞서 지난 22일 삼성전기는 일본 전자부품 업체 무라타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특허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삼성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무라타가 삼성 견제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삼성의 방패가 강했던 셈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소송 대결에서도 삼성이 밀릴 게 없다는 것이 특허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삼성전자는 최지성 부회장 직속으로 IP센터를 설치했으며 엔지니어 출신 미국 특허 변호사인 안승호 부사장을 비롯해 특허 전문인력 45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규모는 글로벌 톱 수준으로 2005년 250명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기는 2009년 조직 개편을 통해 대표이사 직속 IP법무팀을 신설했다. 20여 년간 지적재산 관리에 매진해온 이인정 상무를 중심으로 특허인력 수십 명을 확보했다. 삼성SDI도 지재완 법무팀 전무를 비롯해 25명의 특허 출원ㆍ분석ㆍ라이선싱ㆍ소송 관련 인력을 두고 있다.
삼성이 특허소송 전쟁에서 가장 든든하게 생각하는 무기는 기술 특허다. 삼성전자만 등록 특허 10만452건을 보유해 촘촘한 특허 방어 장벽을 구축했다. 미국에서는 IBM 다음으로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 주요 계열사도 각각 7000여 건에서 1만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범위한 특허 교차 사용(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특허 방어막을 한층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IBM과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이에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 마쓰시타 르네사스 도시바 퀄컴 코닥 등과도 특허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삼성은 또 `발목 잡기`식 특허소송에 공세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자체 특허 전문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특허 분쟁 가능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철저하게 권리를 지켜나가고 부당한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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