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 보기] 미래를 만든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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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든 긱스

 “나를 낳은 어머니는 어렸고, 결혼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었죠. 저를 입양시키기로 했어요. 그녀는 내가 꼭 ‘대학을 졸업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게 잘 될 것 같았습니다. 양아버지가 변호사인 집에 입양되기로 결정됐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입양을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우리는 딸을 원한다’고 했죠. 그래서 자녀 입양 희망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뒀던 나의 (양)부모는 한밤중에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가 있는데, 혹시 입양할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어요.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중에 나의 (새) 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입양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죠. 두서너 달이 지난 뒤 나의 부모가 나를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입양에 동의했어요. 이게 내 인생의 시작이었죠.”

 그가 비밀이랄 것 없다는 듯 술술 털어놓은 ‘인생의 시작’은 매우 강렬했다. 그가 17년 뒤 대학에 갈 때 “순진하게도 거의 스탠퍼드만큼이나 (수업료가) 비싼 학교를 선택”했고, “그래서 나의 노동자 계층(working-class) 부모는 (평생) 저축한 돈을 모두 수업료로 써야” 했는데, “6개월 뒤 (그 비싼 수업료를 내며 대학을 다녀야 할) 가치를 찾을 수 없어” 그만뒀다는 얘기까지였다. 나는 그가 대학을 스스로 그만둔 뒤 여러 차례 경천동지할 성공을 거둔 것을 알았으되, 그 삶의 속내까지는 몰랐다. 그저 이상한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을 가진 나머지 “그가 있는 자리에서는 현실이 이리저리 변해. (그래서) 사실상 누구에게나 거의 무엇이든 납득시킬 수 있다(57쪽)”는 괴짜로만 여겼다. 독재를 일삼고, 회사의 운명을 걸 제품을 개발할 소프트웨어 매니저를 뽑는데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자 ‘몇 살 때 동정을 잃었느냐’ ‘엘에스디(LSD)는 몇 번이나 먹어 봤느냐’고 묻고, 급기야 “골, 골, 골, 골” 칠면조 소리를 흉내 내며(138쪽) 사람을 업신여겨 쫓아낸 못된 괴짜. “때때로 성미가 급하고 부하 직원에게 가혹했다(209쪽)”는 괴짜였다.

 생각이 조금 바뀐 건 그가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장에서 한 연설 때문이다. 올 2월 어느 날 인터넷에서 그 연설장면을 찾아 들었는데, 그의 남다른 ‘시작(입양)’이 그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마음에 적어두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그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 1984년 1월 24일 ‘매킨토시’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렸던 사람. ‘토이스토리’로 세상을 데우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게임 질서를 바꾼 그 잡스다.

 이 책(원제:Revolution in the Valley)의 저자 앤디 허츠펠드는 많은 ‘맥킨토시의 아버지’ 후보 가운데 “결국 한 개인이 명예를 누려야 한다면 내 선택은 분명하다. 바로 스티브 잡스(404쪽)”라고 썼다. “잡스의 비전, 탁월함에 대한 열정, 순수하고 강한 의지, 말할 것도 없는 굉장한 설득력”이 “여러 불가능한 기준을 넘어설 수 있게 했다”고 풀어냈다. 잡스는 과연 ‘미래를 만든 긱스(Geek)’이고,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앤디 허츠펠드 지음. 송우일 옮김. 인사이트 펴냄.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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