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킨다.’
창업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꽤 괜찮은 아이템에 고객까지 확보한 터였다. 하지만 창업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창업을 해야했다. 자신을 믿어준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창업밖에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찬웅 아토솔루션 사장은 2007년 폭스콘 구매담당자와 약속했던 멀티칩패키지(MCP) 공급을 위해 창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을 하고 첫 해부터 매출 130여억원을 올렸던 것은 이미 고객을 확보한 후 사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객 확보인 것이 사실인지라, 결과만 듣고 보면 박찬웅 사장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듯했다. 하지만, 그 약속만 아니었다면 백번이라도 포기했을 거라 생각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MCP 사업은 아토솔루션에서부터 진행한 사업은 아니다. 박찬웅 아토솔루션 대표가 전 직장인 마스터테크론에서 신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바로 지금 아토솔루션의 주력인 멀티칩패키지(MCP) 사업이다. 전 직장 사정으로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돼 이 사업을 맡아줄 다른 회사까지 알아본 그였다.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창업을 결심했다. 전 직장에서 이 사업을 함께 일궜던 사람들이 함께 나섰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토솔루션은 2007년 10월 문을 열었다.
아토솔루션이 폭스콘에 공급하는 MCP는 낸드플래시와 D램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은 제품이다. 디지털카메라에 주로 쓰인다. MCP 회사는 많지만 디지털카메라용 MCP를 만들어주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그동안 디지털카메라에 굳이 MCP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렌즈가 커지면서 PCB 면적을 줄여야 했던 것. 그는 디지털카메라에 적합한 저용량 MCP 시장에 주목했고, 그 결과 창업과 함께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고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에서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아토솔루션은 첫 해 매출 137억원을 시작으로 지난 해에는 27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인 2012년에는 매출 1000억원, 수출 8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찬웅 사장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아토솔루션의 탄생과 성장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며 “창업을 한 후에도 여러번 시련이 있었지만 고객에게 보여준 신뢰를 통해 이겨나갔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사업은 신뢰를 지키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은 네트워크를 소중히 했기에 지금의 기회도 얻었다.
사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엔지니어 출신이 해외 공급선과 네트워크를 쌓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연은 하이닉스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LG반도체에 설계 엔지니어로 취업했지만, IMF를 거친 후 진행된 ‘빅딜’로 인해 하이닉스반도체 소속이 된다. 당시 이 사건은 누구보다 LG반도체 직원들에게 큰 혼란이었다. 고용은 보장됐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이라면 미래는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회사를 다니는 둥 마는 둥하며 방황을 했다. 직장생활을 접을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요리학원을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못할 일이었다. 차라리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해, 일을 배우면서 몰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원한 것이 마케팅이었다. 이것이 지금 아토솔루션에 이르기까지 큰 기회를 만들어주는 발판이 됐다.
박 사장은 “당시 마케팅팀에 기술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이 흔치 않아서 기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일을 도맡아했다”며 “팀에 배정된지 한달이 채 안돼 중국과 대만 등 해외 출장을 수시로 다녔다”고 설명했다.
그 때 만났던 고객들과의 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사실 팀에 배정된지 얼마 안된 신참이 해외 곳곳을 누비면서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어찌보면 운이 좋았던 셈이다. 사업의 계기를 만들어준 폭스콘 구매담당자도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마케팅을 하던 시절부터 연락을 해 온 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알게 됐다. 그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인식됐다.
마케팅에 점점 재미를 붙일 무렵, 영업까지 욕심이 났다. 영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대기업이라는 간판도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업을 하면서 반도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당시 착안했던 것이 지금의 아토솔루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박찬웅 사장에겐 늘 ‘사람’이라는 재산이 있었다. 중학교·고등학교 정규교육도 못마칠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주변에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5살의 나이에 생업에 뛰어들었다. 슈퍼마켓 배달, 반지 세공, 꽃배달 등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다.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은 그에게 검정고시를 권했다. 어려운 순간마다 응원해 준 그들이 없었다면 미래를 꿈꾸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낮에는 일하고 새벽에 학원에 다니면서 1985년 고등학교 입학자격 시험에 합격했고 그 이듬해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에 붙었다. 1년여 더 공부한 끝에 8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일을 계속 해야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방위 판정을 받았지만 현역입대를 자원했다. 누님에게 짐이 될까 걱정돼서였다. 제대 후에도 아르바이트는 계속됐다. 당시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5년 후 음식점을 차리겠다는 꿈을 꿨다. 사실 대학에서 공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것일 수도 있다. 음식점을 차릴 자본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취업준비를 했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래서 LG반도체 인수합병후 방황 속에 요리학원을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 놀랍다. 결과는 음식점 창업이 아니라 반도체와 영업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니 말이다. 음식점 창업은 먼 미래의 일로 더 미뤄뒀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한,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더욱이 그 일을 믿고 함께 해준 사람들도 있다. 디지털카메라용 MCP라는 사업을 처음 고안했을 때부터 함께 했던 당시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아토솔루션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R&D, 기획, 영업 모두 이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한번 ‘인복’을 느낀다.
‘인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설계 능력을 갖춘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그와 함께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열어줬다. 반도체 설계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초다.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들이 일궈낸 성과다.
아토솔루션은 2분기 시리얼인터페이스(SPI) 기반 낸드플래시메모리를 내놓을 예정이다. 120나노 공정으로는 개발에 성공했으나 양산성을 위해 70나노 공정으로 생산한다. 생산은 대만의 파운드리업체인 프로모스가 진행한다.
SPI기반 노어플래시메모리는 이미 상용화됐지만, 낸드플래시는 아토솔루션이 처음이다. 노어플래시보다 저렴하고 소비전력도 적기 때문에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올해부터 매출이 일어나 내년에는 15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이 제품은 휴대폰을 비롯해 다양한 IT 기기에 활용할 수 있다. 범용성이 뛰어나다.
신생업체의 제품을 믿어준 폭스콘 구매 담당자,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 그에게는 가장 큰 재산이다.
그가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인연이 있어서다. ‘신뢰’는 박 사장의 사업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신뢰는 사업의 연속성을 담보해주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토솔루션의 주 고객이자 2009년 당시 매출의 60%를 차지하였던 폭스콘과 있었던 일이다. 2009년 3분기부터 대만 현지 경쟁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매출이 급감하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아토솔루션도 저가 공세에 맞서 가격을 내려야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토솔루션이 선택한 것은 신뢰였다. 아토솔루션의 제품은 품질을 만족하고 납기를 지킨다는 원칙을 선택한 것이다. 오히려 폭스콘에 신뢰도를 높여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가공세를 하던 경쟁업체들은 저가 공세를 하다보니 품질과 납기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오히려 저가공세로 인해 가격재상승요구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1년 만인 2010년 3분기부터 폭스콘 최대 MCP 공급업체의 지위를 회복했다.
MCP 사업에서 기반을 다진 아토솔루션은 SPI낸드플래시를 통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지켜왔던 ‘신뢰’의 원칙으로 중국과 대만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박찬웅 사장은 “아토솔루션의 중장기 비전은 세계적인 메모리 공급업체로 성장하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내년 매출 1000억원, 수출 8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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