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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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6월 10일 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LG텔레콤 등 3개업체를 선정하는 등 7개 신규통신사업자를 발표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일지

 1996년 6월 10일 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LG텔레콤 등 3개업체를 선정하는 등 7개 신규통신사업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41>

 

 신규통신사업자 발표

  

 1996년 6월 10일, 정보통신부 22층 중회의실.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현 KT 회장)은 이날 오후 2시 지난 1년여 진행해 온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의 ‘마침표’를 찍는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기업들 간 1년여 ‘통신대혈투’가 막을 내리는 운명의 순간이었다.

 심사결과는 신규통신사업신청자들에게 천당과 지옥이란 극(極)과 극을 오가게 만들었다. 승자는 환호했지만 패자는 좌절했다. 희비(喜悲)쌍곡선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환호와 탄식’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란 상반된 두 기류가 흑백처럼 교차했다.

 발표는 한 순간이었지만 그 여진(餘震)은 정권을 건너뛰어 진지리칠 정도로 오래갔다.

 이 장관의 발표를 앞두고 중회의실은 몰려든 취재진과 업체 관계자들로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신문과 방송의 취재진만 해도 100명 이상이 몰려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정통부는 발표에 앞서 통신위원회(위원장 윤승영변호사)의 심의를 거쳤다. 청와대에 이런 결과를 보고했다.

 이 장관이 발표자료를 손에 들고 연단위에 올라서자 중회의실의 모든 눈과 귀는 이 장관의 입으로 쏠렸다.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정통부는 PCS를 포함해 7개 신규통신사업 분야에 모두 27개 컨소시엄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습니다.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PCS의 경우 LG그룹의 LG 텔레콤과 한솔그룹의 한솔PCS, 한국통신자회사 등 3개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국가기간통신사업자인 한국통신은 자회사를 설립해 PCS 사업을 운영토록 정부가 사업권을 미리 주기로 한 상태였다.

 “TRS 전국사업자로 아남텔레콤을, 무선데이터통신 전국사업자에는 에어미디어, 인텍크무선통신, 한컴텔레콤 등 3개 업체를 각각 선정했습니다. 정통부는 선정된 법인이 법인설립 등기와 입시 출연금 납입, 기타 허가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이행하는대로 허가서를 교부할 예정입니다. 모든 신청법인에게 사업권을 드리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공정한 심사에 협조해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날 발표로 PCS 장비제조업체군에서는 삼성-현대의 컨소시엄인 에버넷이 LG텔레콤에 밀려 탈락했다. 비장비제조업군에서는 한솔PCS(한솔-데이콤)를 제외한 금호-효성의 글로텔, 중소기업협동중앙회의 그린텔이 떨어졌다.

 국제전화에는 일진, 한라 등 8개 업체가 연합한 한국글로벌텔레콤이, 전기통신 회선설비 임대에는 삼보컴퓨터와 한전 등이 주요주주로 컨소시엄을 이룬 윈네트와 대한송유관공사가 주요주주로 참여한 지앤지 텔레콤이 각각 선정됐다.

 5개 컨소시엄이 허가신청서를 제출한 TRS 수도권사업자에는 ㈜서울TRS가, 4개 컨소시엄이 신청한 부산·경남권에는 글로벌텔레콤, 3개 컨소시엄이 경합을 벌인 대구·경북권에는 대구TRS, 2개 컨소시엄이 경쟁한 광주·전남권에는 광주텔레콤이 뽑혔다.

 단독신청한 제주권에서는 제주티알에스가 선정됐으나 대전·충남권에 사업허가를 신청한 대전주파수공용통신의 경우, 적격 심사에서 탈락했다. 한국통신에 사업권이 내정된 CT-2 전국사업을 제외하고 3개 업체가 경합을 벌인 CT-2 수도권사업에서는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 등 2개 업체가 선정됐다.

 부산·경남 등 8개 지역 사업자에는 단독 신청했던 컨소시엄들이 모두 적격심사를 통과, 선정됐다.

 이 장관은 사업자선정 결과 발표 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이번 사업자선정은 기업경쟁력과 국내 유관산업 육성, 다수 기업참여로 국내기업의 세계화 등 3개 심사원칙을 적용했다. 심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기자와 이석채 장관 간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기자:일부 업체에 대해 사전내락설이 나돌았다. 그런 업체가 대부분 선정됐다.

 이 장관: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심사위원 선정부터 심사과정이 모두 공정하게 이뤄졌다. 42명의 심사위원들도 객관적으로 심사했다.

 기자:심사에서 가장 역점을 둔 점은 무엇인가.

 이 장관:기술과 재정, 그리고 영업 등에서 가장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업체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중소기업육성의지도 고려했다. 과도한 대기업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경계도 비교적 높은 심사기준이었다.

 기자:계량평가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이 장관:그런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청문평가를 추가 한 것이다.

 기자:청문심사를 PCS와 TRS전국사업자로 제한한 이유는?

 이 장관:청문평가의 목표는 중소기업육성의지와 실천 방안 등 사업계획서에 의한 비계량 평가를 보완하고 정부의 경제정책과의 부합성 및 관련 심사항목간의 일관성. 연관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30대 규모기업 집단에 속한 대기업이 주주로 참여한 PCS와 TRS전국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자:채점표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 장관:신청업체의 영업이나 기술력, 재무상태, 기업의 도덕성 등을 비교평가해 점수를 산출했다. 그런 내용을 공개하면 기업비밀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심사평가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나중에 공개토록 하겠다.

  

 사업자선정 결과 발표와 관련해 이날 정통부 공보관실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정통부는 보도자료를 40부 가량 만들었다. 정통부 출입기자가 30여명이어서 10부 정도는 여유있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 발표장에 몰린 기지들이 100명이 넘었다. 보도자료를 못받은 기자들이 “왜 보도자료를 일부에게만 주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공보관실은 추가로 보도자료를 인쇄해 기자들에게 나눠주느라 진땀을 흘렸다.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들은 축제분위기였다. 선정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터트리며 서로 축하 악수를 나누었다. 반면 탈락한 업체들은 침울한 분위기였다. 일부는 선정기준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격전 끝에 PCS사업권을 딴 LG그룹은 정부의 발표 직후 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LG텔레콤 사장, 부회장,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회장 역임, 현 마루홀딩스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의도 쌍둥이빌딩 17층 임원회의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 사장은 “통신산업 경쟁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LG그룹은 오후 6시부터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지하1층에서 사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생맥주 파티’를 열어 자축했다. 생맥주 파티에는 구본무 그룹회장과 정장호 사장 등 그룹 사장단이 대거 참석해 두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생맥주를 사원들에게 제공했다.

 LG그룹 홍보실 임원 A씨의 말.

 “사업권 선정발표 후 대규모 자축행사를 별도로 갖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사내 행사로 조용하게 치르자는 의견이 많아 업무가 끝난 후 두 시간 동안 그동안 수고한 사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간소한 모임을 마련했는데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그룹 회장실 심재혁 전무(LG텔레콤 부사장, 인터컨티넨탈호텔 대표 역임, 현 레드캡투어 대표)는 “외부에 나가있던 구 회장은 연락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삼성과 현대컨소시엄인 에버넷은 실망감이 컸다. 발표날 오전까지도 “에버넷이 기술점수에서 컨소시엄보다 2점 가량 앞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신감에 넘쳤던 에버넷은 막상 탈락하자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날 오후 공식적으로 “정부의 정책결정에 승복하며 그동안 경쟁해온 LG에 축하를 보낸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속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비서실 B이사의 증언.

 “속내는 불만이 많았어요. 정부의 심사과정에서 선정기준이 오락가락하고 명쾌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드러낼 수는 없었지요.”

 TRS 전국사업자로 선정된 아남텔레콤의 김주채 대표(현 아남인스트루먼트 회장)는 통신사업자를 발표한 후 서울역 앞 벽산빌딩에 개설한 디지털TRS시험국을 방문,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반면 컨소시엄 참여업체의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PCS사업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정부 발표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다.

 중앙회는 컨소시엄 조합원 이름으로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에 따른 입장’이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심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으며, 어떠한 대응책도 모두 구사하겠다”는 초강경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업체 간 명암(明暗)이 교차한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은 한국이 통신강국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이정표(里程表)가 됐다.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일지

 1995년 7월 4일 = 7개 분야 30개 신규 기간통신사업자 1995년 내 선정계획발표

 1995년 8월 31일 = 선정요령 공고 무기한연기

 1995년 9월 7일 = 사업자선정 1996년 상반기로 연기

 1995년 12월14일 = 추첨으로 사업자 최종 선정하기로 한 선정요령 공고

 1996년 1월 = 이석채 장관, 추첨방식 완전 배제 발언

 1996년 3월 6일 = 추첨방식 배제, 개인휴대통신사업권을 장비제조업체군과 비제조업체군으로 분리허가, 경제력 집중 및 도덕성 등을 심사항목에 담은 수정신청요령 공고

 1996년 4월 15일~17일 = 7개 분야 53개 컨소시엄, 사업계획서 접수

 1996년 4월 25일~5월 8일 = 동일인 지분제한 등 전기통신사업법 관련규정위반 및 중복신청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1차 자격심사

 1996년 5월 23일~6월 1일 = 사업계획서에 대한 2차 비계량평가 실시

 1996년 6월 3일~4일 = 개인휴대통신 장비제조업체군과 비장비군 및 전국TRS신청 컨소시엄에 대한 3차 청문회

 1996년 6월 5일~8일 = 계량평가 및 합산

 1996년 6월 10일 = 신규 기간통신사업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