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로봇 테크(RT)

Photo Image

 한 남자가 말한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인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야 로봇 3원칙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표된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 ‘로봇’의 한 장면이다. 이 소설은 60여년 전 로봇 대중화에 기여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로봇’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설계됐지만 ‘사람의 마음을 지녀 인간과 관계를 형성하는’ 로봇의 이야기는 비단 소설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동안 영화 ‘터미네이터’ ‘아이로봇’을 비롯해 수많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로봇은 사람의 상상력을 덧입고 나타났다.

 ◇로봇, 어디까지 왔나=사람과 정서를 교감할 수 있는 로봇을 현실에서 만나보는 날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캐나다 과학자 르트릉이 만든 애인 대행 로봇 ‘아이코’는 미모의 얼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2개 언어 1만3000여 단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신문까지 읽을 수 있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의 애완용 로봇인 소니의 ‘아이보’는 20만대가량 판매됐다. 대당 25만엔이라는 높은 가격을 감안하면 잠재력이 높은 편이다. 국내 업체의 경우 유진로보틱스가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로봇 ‘아이로비’를 개발한 바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이처럼 사람과 정서를 교감할 수 있는 로봇 시장의 수요는 더욱 늘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의 경우 1인 가구는 1995년 164만가구에서 2008년 334만가구로 13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1인 가구는 2030년경 전체 가구의 23.7%, 471만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로봇은 크게 노동력을 대신하는 ‘노동 서비스형’ 로봇과 인간의 부족한 정서를 보충해 주는 ‘정서교감형 로봇’으로 나뉜다. 노동 서비스형 로봇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정용 자동 청소로봇이 대표적이다. 2001년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가 로봇 청소기 ‘트리로바이트’를 출시한 후 국내외 다양한 업체가 청소용 로봇을 출시했다. 로봇 청소기는 이미 신혼부부의 혼수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을 만큼 삶 속에 깊이 침투한 성공적인 로봇이다.

 삼성전자의 ‘탱고 스텔스’, LG전자의 ‘로보킹’ 등 사람 대신 구석구석 집 안 청소를 해주는 노동 서비스형 로봇은 이미 시장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실버케어용 로봇은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기반으로 로봇시장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실버타운이 급증하면서 다양한 노인 전용 서비스형 로봇이 속속 산업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노인층이나 장애인의 허리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승마형 헬스 기구는 최근 사람의 생체 신호와 동작 의지까지 인식하는 새로운 승마형 로봇으로 진화했다. 사용자의 체형을 스스로 인식해 필요한 곳에 실제 손과 유사한 자극을 주는 3차원 안마로봇 ‘체어봇’도 산업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 밖에 일본 로봇 제조사인 도쿄리키가 개발한 ‘모토맨SDA10’은 일본의 전통 부침개 ‘오코노미야키’를 능숙하게 만들 수 있으며, 중국 판싱과학 및 테크놀로지사에서 만든 ‘AIC-AI’ 쿠킹 로봇은 수천가지의 중국 요리 조리가 가능하다.

 ◇국내 RT산업 현황은=최근 한국의 간판 지능형 로봇인 KAIST의 ‘휴보’가 미국 유수대학과 싱가포르 국책연구기관 등에 수출계약이 성사되는 쾌거를 이뤘다. 휴보는 인간처럼 두발을 이용해 시속 1.25㎞ 속도로 걸을 수 있고 다섯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추는 수준에 도달했다. 휴보는 일본이 자랑하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에 비해 걷는 속도가 조금 느리고 계단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다섯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부속장치를 내부에 장착해 훨씬 날렵한 몸매를 가졌다는 점에서 일본과 기술격차를 크게 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휴보에 이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형로봇연구센터는 세계 최초의 네트워크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터넷 공모에서 ‘마루’와 ‘아라’라는 애칭을 얻은 이 로봇은 네트워크로 외부의 대용량 컴퓨터와 연결해 고도의 지능을 가질 수 있다.

 지능형 로봇 산업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최첨단 기술의 융합과 관련 부품 업계의 동반 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 있다. 최근 삼성테크윈 등 국내 기업도 지식경제부 스마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감시경계로봇 시스템’을 활용해 알제리와 55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정부가 지난 9년간 7500억원을 투자한 로봇 연구개발(R&D)이 결실을 보고 있는 것. 로봇시장은 지난 2009년 생산액 1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이 밖에 미국 기업 다빈치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의료수술용 로봇시장에도 큐렉소, 이턴 등 토종 기업의 진출이 이뤄졌다. 수술 전 환자의 뼈를 촬영해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구성해 주는 로봇이나 배에 작은 구멍을 뚫어 내시경으로 뱃속을 들여다보며 시술하는 복강경 수술로봇 등은 우리 기업의 기술로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다.

 ◇영세성과 인력난 극복이 과제=현재 한국의 로봇기술은 일본에 이은 세계 2위다. 그러나 국내 로봇 산업은 양극화 구조다. 제조 로봇은 대기업, 서비스 로봇은 중소·벤처기업 중심이다.

 애초 삼성전자·삼성항공·현대중공업·LG산전·두산기계·기아중공업·대우중공업 등이 로봇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외환위기를 전후해 삼성전자·현대중공업·두산메카텍 세 곳의 대기업과 로보스타·로보테크 등 다수의 중소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100여곳에 이르는 로봇 관련 중소기업은 대부분 자본금 100억원 미만의 소규모 회사다.

 인력 구조는 좀 더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지능형 로봇 산업을 이끌 전문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로봇 선진국인 일본과 비교해도 기업 부문의 인력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의 전문인력이 대학과 다른 IT업종으로 이동한 탓이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박사급 전문가는 전체의 2% 정도로 인력 편중도 심한 실정이다.

 한편 지난달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환경부 등 7개 부처는 ‘범부처 로봇시범사업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대형 사업 위주로 2013년까지 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의료와 교육 등 고부가가치 분야 로봇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동안 사업당 예산은 1억~2억원에 불과했지만 이제 최대 20억원까지 가능하며 관계부처 간 공조도 강화된다.

 세계 시장에서 자웅을 겨울 국내 기술기업 육성과 청소기 등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활용처 발굴이 수반되면 ‘2020년 1가구 1로봇’이라는 전망은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