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현장에 남겨진 미세한 혈흔을 채취해 유전자(DNA) 감식으로 범인을 밝혀내거나, 인터넷 서버 접속 기록을 역 추적해 범인을 찾는 등의 과학수사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갈수록 범죄수법이 지능화되면서 DNA감식에서부터 영상 및 음성분석, 각종 디지털자료 감식 등을 포함하는 과학수사의 영향력 역시 커지는 추세다.
이용 대검찰청 과학수사기획관은 “과학수사는 각종 범죄 수사의 핵심이자 기초가 됐다”면서 “대검찰청은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지난 해 과학수사기획관 산하에 DNA수사담당관실을 신설, 디지털수사담당관과 과학수사담당관 등 3담당관 체제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지난 해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공포되면서 DNA수사의 법적인 기반이 마련, 과학수사담당관실의 역할도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법률에 따라 검찰은 특정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DNA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각종 흉악범죄를 조기에 차단하는 과학수사의 인프라가 제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얼마 전 대검은 표준과학연구원과 전자통신연구원등 6개 연구기관과 과학수사 전문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 기획관은 “원자력과 해양오염 등 대검에서 과학수사를 하는 데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면서 “향후 수도권 내 대학연구소 등과도 협력관계를 마련해 과학수사의 전문성을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실은 최근 들어 더욱 중요해진 디지털수사의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4년에 걸쳐 전국 디지털수사망 구축사업을 시작했고, 모바일과 컴퓨터 등 분야별로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이 기획관은 “최근 발생하는 범죄는 대부분이 컴퓨터와 모바일기기에 연계돼있다”면서 “디지털 포렌식 전문수사관 과정을 운영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디지털 증거물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지털증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법제도가 매우 부족하다”면서 “디지털시대에 걸맞게 사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각화해서 복원하는데 무엇을 원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개념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이다. 이 기획관은 “생활의 패러다임이 디지털로 바뀌지 오래인데 여전히 1950년대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에 입각해 판결한다”면서 “이는 철기시대에 일어나는 일을 구석기시대의 법률로 재판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검이 지난해 창립한 한국포렌식학회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도 디지털수사에 대한 법제도와 연구기반을 마련하고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이 기획관은 “과학수사의 필요성이 커진 데 반해 관련 예산이나 인력은 국민소득 기준으로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사법정의를 구현하기위해서는 합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원기자 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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