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롯데홈쇼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바로 세라믹 냄비 ‘엘쿡(L.COOK)’이다. 이 제품의 인기 요인은 인체에 무해한 특수 에콜론 코팅 처리로 세척이 용이하고 핑크·그린 등 화사한 색상으로 주방 인테리어 효과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매 방송마다 엘쿡 일주일 무료체험 행사를 실시해 이를 체험해 본 주부들의 입소문도 엘쿡 열풍의 원인이 됐다. 덕분에 지난 2009년 론칭한 엘쿡은 지난해 말, 누적 매출액 270억을 넘어섰다.
엘쿡의 탄생은 롯데백화점 등에 납품하며 롯데와 15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견실한 국내 협력업체 ‘오트엘’과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트엘은 20년 역사의 기술을 가진 제품 개발 협력업체다. 1989년 설립 이래 해외 수출과, 롯데백화점·롯데홈쇼핑 납품 등으로 연 1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우수 중소기업이다. 부산과 화성에도 공장을 갖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2008년, 산업계에 ‘상생’이라는 화두가 나오기도 전에 대기업이라면 기술력은 있지만 자사 브랜드가 없는 우수 중소기업 상품 판로를 모색해줘야 한다고 여겼다. 롯데 측은 바로 기획 단계로 넘어갔다. 기술력은 있지만 마케팅과 지속적인 애프터서비스(AS) 능력이 부족한 기업을 발굴, 고객에게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었다.
롯데홈쇼핑 식품주방팀은 오트엘과 오랜 기간 동안 일했기 때문에 기술력을 알고 있었다. 먼저 협력을 제의했다. 주방용품에 대한 고객의 수요를 알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년이 넘는 론칭 준비 기간 동안, 제품에 대한 완벽함을 더하기 위해 각종 테스트와 특허 결과들을 검토했다. 트렌드를 예측한 상품기획과 시장조사로 고객수요도 예측했다.
엘쿡의 엘(L)은 롯데(Lotte)의 ‘L’자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사내 공모를 통해 만든 브랜드명이다. 엘쿡은 출시 전부터 특허와 실용신안 등을 획득했다. 각종 안전시험도 통과했다. 액티바 코팅과 실용신안을 받은 온도센서 핸들은 물론, 넘침 방지 꼭지 뚜껑 등이 엘쿡이 얻은 특허다.
마케팅도 중요했다. 가정주부들에게는 불소수지(화학적 성질이 뛰어난 플라스틱)를 사용하지 않아 멜라민과 포름알데히드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어필했다. 제품 표면을 샤틴공법으로 무광처리해 얼룩과 흡집이 쉽게 나지 않는 ‘내구성’을 적극 소구했다.
이런 엘쿡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금은 알록달록한 컬러냄비로 유명하지만 초창기 엘쿡은 회색빛의 스테인리스 냄비였다. 지난 2009년 론칭 당시 통 3중 스테인리스 냄비를 한 세트로 묶어 내놨다. 저가로 기획 생산해 싼 가격에 내놨지만 소비자들에게 전혀 어필을 할 수 없었다. 소비자들은 ‘너무 염가라 제품에 하자가 있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기존 스테인리스 냄비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구매를 하지 않았다. 오트엘 측은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동원해 원자재 업체와 협의 끝에 내놓은 소중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판매량은 오르지 않았다.
오트엘은 낙담하지 않고 다시 보완책을 찾아야만 했다. 컨셉트를 개선하고 브랜드 홍보를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에는 스테인리스 냄비 그대로 ‘탈부착 핸들’만 만들었다. 디자인만 조금 수정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약했다. 롯데홈쇼핑 측과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나 한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댔다. 롯데홈쇼핑과 오트엘은 엘쿡 가격을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서 디자인을 아예 다르게 가야겠다고 정했다. 리스크가 컸다. 그러다 색상을 넣자는 의견이 나왔다. 주방도 하나의 패션이라는 주부들의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엘쿡은 스테인리스에서 고운 색을 넣은 세라믹 냄비로 재탄생했다. 드디어 지난해 1월, 리뉴얼한 엘쿡은 속칭 말해 ‘대박’을 쳤다.
이상훈 롯데홈쇼핑 식품주방팀 과장은 “수입명품 주방기기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명품 주방기기가 서민 부엌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 셈”이라며 “협력사와의 상생의지로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엘쿡은 홈쇼핑 PB 브랜드다. 이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있다. 홈쇼핑은 오프라인과 달리 매번 방송 시마다 좋은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롯데홈쇼핑에만 의존하는 것은 어찌보면 모험이다. 재고 처리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롯데홈쇼핑은 재고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방송이 잘 풀리지 않아 재고가 쌓여도 이를 돌릴 수 있는 루트와 능력이 필요했던 것. 롯데홈쇼핑은 그룹이 유통 강자인데다 알토란같은 계열사가 많다는 점을 착안했다. 그간 타 PB 브랜드들이 홈쇼핑 채널 한 곳에서만 팔리는 데 반해 롯데홈쇼핑 엘쿡은 마트·슈퍼에서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롯데마트 21개점에 입점, 연계했다. 게다가 롯데마트 홈쇼핑관인 ‘롯데홈쇼핑 팝업스튜디오 250’을 통해 홈쇼핑 히트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온오프라인 연계로 협력사에게 다양한 판로를 제공하는 진정한 상생협력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김종영 롯데홈쇼핑 마케팅부문장은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한 상품이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등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의 성공사례를 보여줬다”며 “향후 소비자 니즈를 고려한 고품질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다양한 판로에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김민호 오트엘 대표
“홈쇼핑 기업의 기준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사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 맞추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사전작업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김민호 오트엘 사장은 최근 소비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홈쇼핑 측과 협의가 없으면 제품을 팔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홈쇼핑이 운영하는 아이템 수는 100가지가 안됩니다. 한 시간에 기본적으로 몇 억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즉, 홈쇼핑은 시간 싸움입니다. 시간 안에 어필을 하려면 철저하게 품질을 따질 수 밖에 없죠. 소비자들의 반품률이 높아지면 모두 ‘공념불’입니다.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협의가 없으면 팔기 어렵습니다.”
오트엘 매출에서 엘쿡이 차지하는 비율은 100%다. 엘쿡 매출이 고스란히 오트엘의 매출인 셈이다. 이는 롯데홈쇼핑 측과 철저한 신뢰관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롯데홈쇼핑과 20여년을 같이 일했습니다. 롯데홈쇼핑에서 우리 기술력을 알아보고 엘쿡 생산 제의를 해준 일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브랜드 육성을 위해 월 10회 이상의 지속적으로 엘쿡을 편성해준다거나 PD와 쇼호스트가 상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담’으로 맡겨준 것은 상생의 일환이지요.”
엘쿡은 내년에 해외로 나간다. 롯데홈쇼핑이 지난 8월 지분투자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게 된 ‘럭키파이’는 현재 상하이·중칭·산둥성·허난성·헤이룽장성 등 중국 내 총 6개 지역의 방송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 대표 홈쇼핑 회사다. 이 지역에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것.
“롯데 유통 계열사에 입점한 것은 물론 중소기업 입장에서 쉽사리 진출하기 힘든 해외 시장 판로까지 열어줬습니다. 내년에는 가전제품 글로벌 마켓인 시카고쇼에도 나가 공격적으로 임할 예정입니다. 내년 국내외 매출은 올해보다 두 배 가량 높은 500억원으로 잡았습니다. 롯데홈쇼핑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롯데홈쇼핑의 상생은
롯데홈쇼핑이 단순한 유통채널의 역할을 넘어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 나서고 있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고품질, 합리적인 가격의 실속 있는 우수 중소기업 상품을 발굴하고 지원해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홈쇼핑을 통해 히트한 우수 중소기업 상품의 해외 진출도 돕고 있다.
특히 롯데홈쇼핑은 협력사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고 나섰다. 롯데홈쇼핑 신헌 대표는 ‘에콕스’ ‘리가’ 등 패션의류 협력사 및 상반기 히트상품 ‘엘쿡 세라믹 냄비’ 제조사인 ‘네오쿡’ 등 우수 중소기업 협력사를 순회하며 협력사 직원들을 독려했다. 신 대표는 직접 제조 공정을 살피고 협력사 직원을 격려했다. 방문을 기념해 근무 중 피로를 풀 수 있는 안마기를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또 전국 200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열린의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해 협력사와 가까운 지정병원을 운영해 협력사 직원을 대상으로 무료검진, 병원비 할인 등의 의료 복지혜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열린의사회는 2009년 롯데홈쇼핑과 협약을 맺고 지역 무료의료봉사, 환경 캠페인 등을 함께 해오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동반성장을 위해 자금지원, 경영컨설팅 및 해외판로 개척 등 협력사 지원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의 해외 진출로 우수한 품질의 국내 중소기업 상품이 해외로 소개되고 있어 중소기업 해외 판로 개척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협력사와 공동 상품을 기획해 해외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돕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내 우수 중소기업 상품을 지속적으로 해외에 제안하기 위해 우수 중소기업 제품 박람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R&D 등 품질 개발에도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ISO9001 인증을 획득한 롯데홈쇼핑은 품질방침, 품질목표 수립 등 품질보증시스템과 노하우를 협력사에 공유하고 무료 컨설팅을 시행하고 있다. 협력사의 능력이 향상되면 롯데홈쇼핑과 중소기업의 동반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중소협력사들에게 대출, 대금 선지급을 하는 상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IBK기업은행과 중소기업 신용지원 상품 협약을 맺고 홈쇼핑과 거래하는 중소협력사들이 기업은행에서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손쉽게 대출 받을 수 있는 ‘홈쇼핑 패밀리 기업대출’을 운영 중이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협력사의 요청시, 상품대금을 지급예정일보다 45일까지 앞당겨 지급하는 ‘대금 선지급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 함께 진출할 중소기업 협력사도 공개모집 중이다. 롯데홈쇼핑이 ‘럭키파이’를 통한 중국 홈쇼핑 시장 진출을 계기로 우수한 품질의 국내 중소기업 상품을 해외로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자청한 것.
롯데홈쇼핑 측은 “한류열풍이 일고 있는 중국에 우수 중소기업 상품을 정기적으로 소개해 한국의 우수 상품을 알릴 계획”이라며 “해외진출을 꿈꾸는 중소기업에게 성공적인 중국진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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