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첨단 기술 제품의 최대 상징인 애플 ‘아이폰’이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19억달러나 결손을 낸 것으로 분석됐다. 미 소비자가 ‘아이폰’을 미국산으로 여겨 구매할 때마다 무역 결손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제품 원산지(국가)의 개념이 폐기된다는 해석까지 나왔으되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유큉 칭과 닐 디털트가 쓴 보고서에서 미·중 간 ‘아이폰’ 무역을 통해 미국의 손해(적자)가 19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ADB 보고서는 지난해 미국에서 ‘아이폰’ 1130만대가 팔린 가운데 중국이 조립(어셈블리)해 미국으로 수출한 게 20억2000만달러어치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 수치에서 미국 제조업체가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한 아이폰용 부품이 1억2150만달러어치였으니 결손액이 19억달러라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중국에서 조립한 아이폰 도매가격(부품과 노동력 가치) 178.96달러의 3.6%인 6.5달러 정도를 중국이 벌어들이는 것으로 보았다. 중국 조립 아이폰의 부품·노동력 가치 178.96달러의 34%를 일본이 가져간 가운데 독일 17%, 한국 13%, 미국 6%, 중국 3.6%로 뒤(기타 27%)를 이었다.
두 연구자는 이를 근거로 삼아 “미국 회사가 첨단 제품을 창안하더라도 수출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수출하고 수입되는지의 문제”라고 풀어냈다. 궁극적으로는 한 국가에서 설계해 여러 나라에서 조각조각 부품을 생산한 뒤 또 다른 국가에서 조립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통적인 무역 통계가 “곡해된 거래 실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ADB 보고서는 전통적인 무역 통계에 관한 논쟁에 기름을 부을 전망이다. 그동안 전통적 무역 통계는 중국의 통화 정책과 불공정 무역 조치에 압박을 가했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강력한 무기였는데, 그 근거가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한 국가로부터 출하(수출)되는 모든 상품이 전적으로 그 나라에서 생산됐다고 가정하는 것은 더 이상 국제 무역의 복잡한 실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미국과 EU를 비롯한 여러 중국 무역 이해관계자(국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됐다.
파스칼 래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지난달 “우리가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중국에서 (단순) 조립한 것에 불과하나 그 제품의 상업적 가치는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온다”며 “생산 제품 원산지(국가)의 개념이 서서히 폐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만약 무역 통계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제품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조정한다면, 2268억8000만달러에 달한다는 미국의 대 중국 무역 결손 규모가 절반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근거로 삼아 “무역 결손에 관한 (미국 등과 중국 간) 정치적 긴장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의 판매 실적과 생산비용 등을 고려해 생산·조립지역을 바꾸거나 아예 제품 출하를 멈출 수 있기 때문에 ‘원산지 폐기론’이 단편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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