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클린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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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버스나 트럭 뒤를 따라가다보면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심심치 않게 봤을 것이다. 시끄러운 소음에 턱까지 떨리는 진동. 경유를 연료로 한 자동차의 특징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초엔 황산화물(SOx) 함유량이 2000PPM에 달하기도 했다.

 이미 옛날 얘기다. 디젤(경유)이 달라졌다.

 환경오염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디젤이 ‘클린’이란 접두어를 달고 친환경 연료로 부상했다. 국내 정유사의 정제 기술 발전으로 국산 디젤의 황 함유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10PPM 정도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량이 사라진 이유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이미 벗은 지 오래다. 클린디젤로 진화했다. 게다가 다른 연료에 비해 연비가 우수하고 힘도 좋다.

 정유업계에서도 기존 CNG버스를 디젤하이브리드버스로 바꾸고 택시 연료에 경유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 정도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국내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유럽은 ‘그린카’, 한국에선 ‘아직’=유럽에서는 강화된 배출가스 허용기준인 유로5의 시행으로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적은 디젤 차량의 보급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디젤 차량을 구입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에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퉈 클린디젤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휘발유 차량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세단도 경유를 연료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소음과 진동이 있지만 휘발유에 비해 1.5배에 가까운 연비와 LPG 수준의 친환경성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푸조와 폭스바겐은 물론이고 최근엔 BMW와 벤츠도 디젤 승용차를 선보이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이는 대중교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0년대 초 독일의 공영 베를린 시내교통 측은 모든 시내버스에 매연필터를 장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수년간 천연가스와 매연필터를 놓고 필드테스트를 한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결정이었다. 디젤엔진에 매연필터를 장착하는 것이 천연가스 엔진으로 교체하고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공해오염방지 효과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디젤 차량에 환경개선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자동차 연식과 배기량에 따라 연간 5만~14만원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경차와 중소형 승용차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유로5의 적용을 받았고 승합차와 화물차도 올해 9월부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국내 시판되는 모델도 환경개선부담금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됐지만 이전 모델은 해당 사항이 없다.

 대중교통에서도 디젤 차량은 여전히 푸대접을 받는다. 서울시의 경우 대표적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도 기존 CNG버스가 최근 폭발사고를 일으켜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지만 환경을 강조하며 바꿀 생각이 없다. 미세농도 먼지를 프랑스 파리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의도다.

 사실 디젤 엔진이 LPG엔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적지만 미세먼지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1㎞ 가는 데 0.03g 많은 정도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 시내버스의 70%가 디젤 차량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클린디젤차, 실현 가능성 높은 그린카=클린디젤 자동차는 그린카로 소개된 것 중에서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그린카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국내 그린카 기술 중 클린디젤 차량이 78%로 기술 수준이 가장 높다. 국산화가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서도 수차례 진화를 거쳐 클린디젤 차량이 판매되고 있다. 유럽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5에 맞춘 현대기아자동차의 싼타페나 쏘렌토R 등이 그 예다.

 정유 업계는 클린디젤의 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15일에는 대한석유협회 주도로 개발한 디젤하이브리드 버스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CNG버스를 고수하고 있고 CNG하이브리드 버스 도입을 추진 중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디젤하이브리드버스와 함께 추진하던 경유 택시 도입도 한동안 표류하게 됐다.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 소위에서 택시 연료에 경유를 추가 도입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불합리한 세제, 재조정돼야=석유협회에 따르면 디젤은 휘발유보다 연비가 30% 좋고 LPG보다는 60%가량 우수하다. 이른바 ‘힘’도 좋아 어지간한 경사는 무리 없이 올라간다. 문제가 됐던 배출가스 문제도 해결한 지 오래다.

 언뜻 봐서는 디젤 차량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유는 불합리한 세제다.

 정부는 정제 과정에서 4%가량만 생산되는 LPG엔 세제 혜택을 주고 16%가 나오는 디젤은 제외시켰다. 11월 1일 기준으로 자동차용 디젤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570원이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자동차용 부탄은 ㎏당 203.16원, 일반용 프로판은 ㎏당 22원, 일반용 부탄은 ㎏당 347.88원이다. 세전 가격은 LPG가 더 비싸지만 세금이 붙고 나면 경유가 500원가량 비싸다.

 LPG의 세금 혜택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남아도는 LPG의 수요를 늘리고 친환경 교통수단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LPG 택시를 도입하고 세금을 적게 부과한 데서 유래한다.

 이후 택시 및 장애인 차량을 비롯해 LPG 차량이 급증하면서 오히려 LPG 전체 소비량의 65%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다. 2009년 수입액만 29억달러에 달한다.

 이와 관련, 유류세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류세의 경우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려한 조정세 개념인데 정제 기술 발달로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 디젤에 아직도 과도한 세금을 매기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인터뷰/정동수 한국기계연구원 그린카센터장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그린카가 바로 클린디젤 자동차입니다.”

 정동수 한국기계연구원 그린카센터장은 “클린디젤 자동차의 가장 큰 장점은 대체할 연료가 많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디젤엔진은 석탄액화(CTL)나 가스액화(GTL) 등의 연료를 대체 사용할 수 있다”며 “이미 관련 기술 개발도 대부분 끝난 상태”라고 밝혔다.

 GTL의 경우 어느 정도 상용화가 이뤄져 휘발유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고 태국과 그리스에서는 주유소에서 혼합해 판매하고 있다. 디젤 차량의 가장 큰 약점인 원유 고갈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된 것이다.

 정 센터장은 “실제로 기존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가 바로 원유의 고갈이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발표한 자료를 봐도 2100년까지는 화석연료 비중은 여전히 높다”며 “특히 천연가스의 경우 가채 매장량이 100년 이상이고 석탄도 이에 못지않다”고 말한다.

 내연기관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설사 원유가 고갈되더라도 가스나 석탄을 액화해서 얼마든지 사용가능하다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오히려 대표적 그린카로 보급을 서두르고 있는 전기차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전기차의 경우 탄소를 저감한다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보쉬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럽 국가 중 전기차로 바꿨을 때 탄소가 줄어드는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이탈리아 정도입니다. 독일이나 스페인·미국·캐나다 등은 오히려 더 많이 발생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정 센터장은 “자원에서부터 차량 운영까지 탄소배출량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는 클린디젤 차량보다 탄소배출량이 33%나 더 많다”며 “프랑스처럼 원자력이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나라들에서만 전기차로 인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전기차의 저렴한 유지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휘발유 세금이 900원 정도인데 전기차로 대체되면 결국 전기에도 세금을 물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라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 전력수요도 증가하는데 이를 충당할 발전소가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전기차 보급의 효과를 보려면 원자력 발전소 비중이 늘어나야 하는데 현재 국내에 계획돼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전기차 보급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국내 차량 전부를 전기차로 바꿀 경우 원자력 22기를 더 지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가솔린 차와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등 모두 미국·일본에 뒤떨어집니다. 이들 나라보다 유일하게 앞선 기술이 있다면 소형 디젤엔진입니다. 그린카 경쟁시대에는 시장경쟁력이 있는 걸 활용해야 합니다. 바로 클린디젤 자동차입니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