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대국2020] 부품소재 좌담회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 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는 삼성·LG전자 등 세계적인 세트 업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부품·소재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필름은 니토덴코, 반사방지필름은 다이니폰인쇄, 투명수지필름 일본제온, 유리기판은 호야, 도금기판은 스미토모금속 등 일본 업체는 특정 소재 시장에서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소재업체는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면서, 높은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한국이 전자제품을 많이 팔아도 이익은 일본이 챙긴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신문은 올해 ‘전자대국 2020’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부품·소재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알렸다. 우리나라가 부품·소재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정부·연구소·업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다. 글로벌 부품·소재 시장 동향, 전문 인력 수급, 정부 정책 등 여러 부문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참석자

△민동욱 엠씨넥스 사장

△박환우 성호전자 사장

△우경녕 LS엠트론 상무

△원동진 지경부 부품소재총괄 과장

△최평락 전자부품연구원장(가나다 순)

△사회: 홍승모 전자신문 전자담당 부장

◇사회(홍승모 부장)=전자신문이 올해 ‘전자대국2020’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부품·소재 산업 발전을 위한 연중기획을 진행했다. 부품·소재 산업이 발전해야 세트 산업의 경쟁력도 생긴다고 본다. 나름 업계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다. 덕담보다는 아쉬웠던 점 위주로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

◇최평락 전자부품연구원장=부품·소재는 우리 산업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분야다. 그동안 부품·소재 산업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비해 과소평가 받아왔다. 전자신문이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하지 않은 기획을 하고, 이슈를 제기했다. IT 업계에서 전자신문이 필독서가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우경녕 LS엠트론 상무=IT 업계의 사랑방이자 정보원으로서 전자신문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품·소재 산업에 좋은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박환우 성호전자 사장=일반 경제지에서는 부품·소재 영역까지 다루지 못한다. 일반 국민도 부품·소재 분야에 무관심하다. 전자신문이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더욱 알리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분한 평가 감사하다. 전자신문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부품·소재 산업의 동향은 어떠한가.

◇민동욱 엠씨넥스 사장=지금은 국내 부품·소재 산업이 과도기적인 상황에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부품산업은 15년 동안 고성장을 이어왔다. 과거 해외에 의존하던 부품들도 지금은 많은 부분이 국산화됐다. 그런데 스마트 기기 시장이 열리면서 환경 변화에 적응한 업체와 그렇지 못한 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자칫하면 과거 15년 동안 육성해온 우리 부품·소재 산업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박환우=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대만의 협력이 진전되면서 국내 업체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대만의 기술력과 중국의 생산력이 더해지면서 ‘차이완 효과’는 세트에서 부품, 소재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이완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국내 업체는 현지화 수위를 높이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망가는 산양은 사냥개가 절대 잡지 못한다’는 말처럼 목숨을 걸고 차이완 업체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사회=일본 소재 업체의 독과점 체제 강화, 중국 부품·소재 산업의 발전 등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가.

◇원동진 지경부 부품소재총괄 과장=정부는 오래 전부터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부품소재 특별법’을 제정해 산업 육성에 주력해왔다. 이 법이 법제화된 지 10년이 지났고 나름 좋은 성과를 거뒀다. 내년에 관련법이 만료되는데 법의 시한을 연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내년에는 국내 부품·소재 업체가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또 소재 산업 육성에 정책적 초점이 더 맞춰진다.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정부 연구개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각 지대를 보완하는 노력도 병행될 것이다.

◇최평락=정부의 ‘20대 핵심부품소재기술개발 지원사업(WPM)’ 등의 정책은 굉장히 잘됐다고 본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소재 산업을 육성하는 노력이 정말 필요하다. 다만 우리 부품·소재 정책이 너무 방어적인 경향이 있다. 그동안 대일무역역조를 분석해 이를 보완하는 식으로 정책이 진행됐다. 이제는 일본을 따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신소재를 미리 선점하는 등 공격적 정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업계 및 연구기관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우경녕=세트보다는 부품의 라이프사이클이 길고 소재는 더 길다. 소재 개발은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이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WPM이 국내 부품·소재 산업 육성의 분위기를 만들고 정책적 틀을 만들었다.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WPM 이후에 부품·소재 산업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부품·소재 전문가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장에서 뽑아 쓸 전문가 풀이 너무 빈약하다.

◇사회=양질의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품·소재 산업의 발전도 어렵다. 정부에서 대기업 퇴직자 활용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차는 뭔가.

◇민동욱=정부에서 부품·소재 분야 인력 수급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다. 대기업 퇴직자 활용제도 실제로 신청하면 인력 풀이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어떤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지 참고해서 우리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부품·소재 기업의 인력 고용에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되면 좋겠다.

◇박환우=우리 회사도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찾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지만 석·박사급 인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인력 수급이 원활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구직자와 고용자를 이어주는 중간 매개체가 활성화돼야 한다. 전자신문 같은 언론사에서 더 많이 공론화하고 공공기관에서 중매쟁이 역할을 해야 된다.

◇우경녕=대기업에서도 부품·소재 인력 구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원들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품·소재보다는 세트를 하고 싶어 한다. 정부가 교육 시스템과 연계해 부품·소재 분야 인력 양성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부품·소재 분야의 병역특례도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면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원동진=국내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현장에서 일하려는 인재가 별로 없다. 다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교육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숙제다.

◇사회=중국의 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세트는 물론이고 부품·소재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은 상당히 빠르다. 중국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어떤 수준인가.

◇민동욱=중국 부품·소재 업체는 기술 완성도는 아직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세트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는 부품·소재 산업이 성장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중국 업체는 세트 산업의 활황으로 더욱 강하고 무섭게 발전할 것이다.

◇박환우=콘덴서·하네스·인덕터 등 수동부품 부문에서 한중일 간 기술 격차는 거의 좁혀졌다. 다만 중국 업체가 취약한 부분이 품질이다. 국내 업체는 불량이 나면 책임을 지는데 중국 업체는 물건을 팔고 나면 ‘나 몰라라’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경영 시스템이 정착될수록 중국 업체도 점차 변할 것이다.

◇우경녕=중국 부품·소재 업체의 투자 규모를 보면 국내 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가격 및 규모로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것은 무모하다. 기술집약적인 제품을 개발해 중국 업체를 따돌려야 한다. 우리도 일본처럼 선행 개발로 초기 고부가가치 시장을 누리고 규모의 시장은 중국에 넘기는 공생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고 본다.

◇민동욱=고급 제품은 고수익 시장이지만 규모가 너무 작은 문제가 있다. 중국과 일본 업체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내 업체는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게 바로 국내 업체가 더욱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최평락=지난 2007년 중국은 한국·일본의 세계 부품시장 점유율을 넘었다. 한국·일본 부품 업체가 중국에 진출해 생산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범용 부품·소재는 현지화 전략으로 가고 일본처럼 우리도 새로운 원천 기술을 확보해 고부가가치를 확보해야 한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대만을 포섭하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고 있는데 이런 요인 때문에 한국 업체가 중국에서 사업하기 힘들어진 측면도 있다. 대만 업체를 만나보면 중국 시장에 대해서는 한국을 아예 제쳐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자칫 중국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고립무원’의 형국에 빠질 수도 있다.

◇원동진=중국은 최근 부품·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더욱 구체화될 것이다. 다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이 커질수록 한국에 기회가 올 수 있다. 일본이 대만과 기술 제휴를 맺고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것처럼 우리도 중국 업체와 협력 모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