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취미로 다닌다면.’ 아마 모든 직장인의 꿈일 것이다. 김영찬 골프존 사장(64)은 실제로 이를 실현한 인물이다. 좋아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스크린골프 업계를 평정했다. 세상에 없던 스크린골프 분야를 개척해 아예 시장을 만들었다. “골프는 취미이자 가장 잘 알면서 좋아하는 분야였습니다. 그만큼 열정이 있었습니다. 골프 인구 등을 고려할 때 시장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김 사장은 벤처 거품이 가라앉기 시작하던 2000년 5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회사를 창업했다. 54세 때였다. 골프존은 ‘인생 이모작’이었던 셈이다. “삼성을 그만두고 음성사서함 회사를 차렸는데 처음에는 순탄했습니다. 6년 정도 지나니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골프와 한층 뜨고 있던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골프장을 재현한 ‘골프 시뮬레이터’ 사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확신은 섰지만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 설립 후 2년 동안 매출이 전무했다. 우수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제품을 개발하는데 1년 이상이 걸렸지만, 개발 후에도 정작 팔 곳이 없었다. 김 사장은 “당시에도 오히려 편법을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 시장과 고객이 알아 줄 것이라고 위안했다”고 말했다.
창업 이후 ‘매출 제로’에서 두 자리를 넘는 데 3년이 걸렸다. 2002년부터 골프존 역사가 만들어졌다. 이어 매년 ‘더블 성장’을 주도하며 2006년, 2007년 각각 120억원, 314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에 1009억원으로 ‘1000억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에는 1331억원에, 521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공교롭게 올해 연도 숫자와 같은 2010억원이다.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굳히며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해 독보적인 시장 수위 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일본 등 해외에서도 ‘골프존’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성공비결을 사업 자체보다는 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골프를 대중 스포츠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골프장에 꼭 가야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방법은 문화였습니다. 스크린 문화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만들어진다고 봤습니다.”
이 때문에 골프존은 대기업에 못지않을 정도로 문화 행사가 다채롭다. 골프존 내부에서는 사회공헌, 문화기업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지난해에는 대전 본사 1층을 갤러리형 복합 문화공간으로 아예 바꿨습니다. ‘CCT(Charity Club Tomorrow)’로 이름 붙이고 지역 주민이 쓸 수 있도록 개방했습니다. 조성된 기금은 전액 공예 명장을 후원하는 사업에 쓰고 있습니다. 2007년 시작한 전통 금속 공예 지원 사업의 일환입니다.”
김 사장은 대전 지역에 전통 문화를 잇는 명장이 많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에 어려움을 겪자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일부에서는 사업과 연관이 없어 반대했지만 다양한 지역 문화활동이 골프존 이미지에 직결된다고 확신한 것이다.
직원이 곧 경쟁력이라고 판단해 내부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회사 곳곳에 스크린골프를 설치해 근무 시간에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스크린골프로 100타를 깨면 일주일간 중국 골프장에서 ‘전지훈련’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연구 개발에도 과감하게 투자했다.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으로 투자한 돈만 150억원이었다.
“좀 과장해 골프에 미친 직원이 많아야 회사가 잘될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머리가 뛰어난 사람도 재미있게 일하는 사람의 생산성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재미를 붙이려면 일단 경험하고 알아야 합니다. 스크린골프 세계 1위 회사에 다니는 직원답게 골프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 골프를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골프존은 올해로 창립 10년을 맞았다. 김 사장이 50대 후반 늦깎이에 ‘재미삼아’ 창업한 회사는 세상에 없는 스크린골프 문화를 만들었다. 골프존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골프방이 3500여 곳으로 늘어났고 1만5000명 이상의 신규 고용 효과를 유발했다.
골프존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골프장’ 문화를 바꾼 데 이어 이제 ‘골프 연습장’ 문화를 바꿔 볼 계획이다. 전국에 촘촘히 박힌 골프존을 네트워크로 묶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시도 중이다. 김 사장은 “스크린골프장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문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는 새 비전을 세워 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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