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캐나다의 한 학자가 “여러 층의 탄소로 이뤄진 흑연을 한 층만 분리해 내면 독특한 물리적 성질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로부터 57년 뒤인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이 가임 교수와 그의 제자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연구원은 이를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연필심으로 활용되는 흑연에 스카치 테이프를 떼었다 붙이는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이들은 오늘날 `꿈의 물질`로 각광받는 `그래핀(Graphene)`을 세계 최초로 분리해냈다.
그리고 지난 5일,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이들에게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를 안겼다.
역대 노벨상 수상 사례 중 새롭게 발견된 기술이 본격 상용화되기도 전에 이처럼 일찌감치 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꿈의 물질 그래핀, 노벨상도 접수=그래핀은 흑연을 의미하는 `그래파이트(Graphite)`와 화학에서 탄소 이중결합 형식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를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다.
흑연의 주성분인 탄소는 독특한 물성을 지녀 다양한 화합물을 만든다. 탄소 원자가 결합해 벌집 모양의 육각형 평면 구조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것이 그래핀이다.
그래핀이 `관(tube)` 형태로 말려 있으면 탄소나노튜브, 5각형과 6각형이 결합된 축구공 모양이 되면 `풀러렌(fullerene)`이 된다.
이처럼 다양한 탄소 동소체 중 그래핀이 `꿈의 물질`로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흑연에서 떼어낸 탄소 원자 한 층인 그래핀은 두께가 0.35㎚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존하는 물질 중 가장 얇으면서도 가장 강하다. 강도가 강철의 200배, 다이아몬드의 2배 이상이다.
게다가 잘 휘어지기까지 하고 구리보다 전기가 100배 이상 잘 통한다.
이같은 장점을 모두 결합하면 입는 컴퓨터, 종잇장처럼 얇고 휘어지는 모니터, 손목에 차고 다니는 휴대전화 등을 만들 수 있다.
◇미래 산업 응용 범위 무궁무진=스웨덴 노벨위원회는 노벨물리학상 선정 배경에 대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기초를 이루는 원소인 탄소가 다시 한번 인류를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그래핀의 응용 영역은 무궁무진해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가장 먼저 그래핀이 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은 은행 현금입출기나 휴대폰 등의 터치스크린이다. 기존에 터치스크린의 표면 소재로 사용돼온 ITO(산화인듐주석)는 2%만 휘어도 쉽게 부서지는데다 전기전도성을 쉽게 잃어버린다.
그래핀은 ITO에 비해 양산기술이 뒤떨어졌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최근 성균관대학교 홍병희 · 안종현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고성능 그래핀 투명전극 소재의 30인치 대면적 제작에 성공했다.
손영우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그래핀 기술 개발 도전과제에 대해 “대면적 그래핀의 순도를 높게 만드는 것이 과제였지만 이는 성균관대 연구팀이 최근까지 거의 완성했다”며 “금속인 그래핀을 응용하기 위해 반도체성을 잘 띠도록 하는 기술 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과제”라고 말했다.
◇국내서도 그래핀 최신 성과 풍성=우리나라 물리학계에서도 그래핀은 최대 화두 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차세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해온 만큼 그래핀 관련 연구도 매우 활발하다.
성균관대 홍병희 교수는 삼성전자종합기술원의 최재영 박사팀과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그래핀 대량 합성 기술을 지난해 1월 네이처 지에 발표 주목 받았다.
이보다 앞서 미 컬럼비아 대학의 한국인 김필립 교수는 200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임 교수의 방식에 따라 그래핀을 분리, 그래핀 분야 강력한 노벨상 후보자로 주목받아왔다.
최근에는 그래핀을 상온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도 우리 연구진이 개발했다.
이효영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팀은 새로운 환원제를 이용해 상온 공정으로 불순물이 없는 고품질 그래핀을 대량으로 생산 가능한 방법을 찾아냈다. 이 연구팀은 현재 국내 특허출원을 마치고 미국 · 유럽 · 중국 · 일본 등 국외 특허출원을 진행 중이다.
이효영 성균관대 교수는 “홍병희 교수의 연구가 그래핀을 만드는 작업이라면 우리 연구팀은 산화 이후 환원 과정을 쉽게 하고 대량 생산할 있는 길을 연 것”이라며 “최근 재료 분야 대기업은 물론 벤처기업들도 그래핀에 관심을 갖고 우리 연구실과 활발하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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