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 상암동의 한 신축아파트에 입주한 강선영(주부 · 43세)씨. 신혼 때인 15년 전부터 살아온 지긋지긋한 전세를 벗어나 드디어 `내 집`에 입성하게 됐다. 중학교 2학년인 큰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딸의 교육비 지출이 늘어 고민하던 강씨를 더 즐겁게 하는 것은 이 아파트에 설치된 `요술상자`다. 가계 지출 중 가장 큰 부담 중 하나였던 냉난방 비용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요술상자로 불리우는 `열원통합 히트펌프`는 국내 중소기업인 H사가 개발한 것으로 아파트 주변의 물(하수 · 상수 · 하천)과 공기 그리고 땅속의 온도차를 통합 활용함으로써 냉난방비용 `제로`를 달성했다. 에너지비용 절감과 지난 201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시행된 탄소세 역시 줄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냉난방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최근 대부분의 건물에는 이 시스템이 필수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특히 강씨의 아파트는 유리창에 설치된 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시스템(BIPV)과 외벽에 설치된 300W급 소형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아파트 내에 설치된 2차전지에 저장해 `열원통합 히트펌프`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한다.
강씨는 이 아파트가 일반 아파트보다 약 5%가량 가격이 높았지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5% 정도는 이 아파트에서 3년만 살면 충분히 에너지비용 절감으로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지금 둘째 딸이 배우고 싶다고 졸랐지만 가계운영이 빠듯해 망설여왔던 `플룻 학원`으로 딸과 함께 가고 있다.
◇온도차 1도도 아깝다고요=불과 10년 후 미래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겠냐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겠지만, 대답은 `가능하다`이다.
현재는 땅속 깊은 곳의 지열이나 하천수 · 하수열 등을 열원으로 사용해야 열효율이 나오기 때문에 경제성문제로 히트펌프의 활용이 제한적이지만, 향후 연구개발을 통해 열효율을 높이면 우리 주변에 있는 하수 · 상수 · 공기 · 해수까지 불과 실내와 몇 도의 온도차만 나더라도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공기 · 수열 · 지열 · 폐열원 등 사용하지 않는 저온의 열원에서 열을 흡수, 냉난방 · 급탕 및 공정용의 고급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친환경 비연소(combustion-free)식 에너지 기기다. 구동 형식에 따라 압축식 · 흡수식 및 흡착식 등 여러 종류가 있으나 압축식 히트펌프가 주로 보급되고 있다.
히트펌프는 100년 이상 검증된 기술로 주택 · 업무 · 산업용으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보일러나 전기히터와는 다른 입력에너지가 직접 전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활용 되는 저온의 열을 고온으로 이동시키는 측면의 에너지 사용으로 효율이 높고 환경문제 낮기 때문이다.
히트펌프는 보통 도심지에서 이용 가능한 배열(빌딩 · 목욕탕 · 수영장 등)과 자연의 미활용 에너지원(공기 · 지하수 · 하천수 · 해수 · 태양열 등) 및 공장배열을 활용한다. 10~30도의 배열을 활용 히트펌프로 난방 · 급탕에 이용 가능한 60~90도의 열 생산에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생열을 축열조에 저장해 냉 · 난방 및 급탕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단일기술로 이산화탄소 절감량이 매우 큰 히트펌프는 기존 1차 열원기기를 대체하는 에너지 기술로 인정받고 있으며, 기후변화협약 대응의 주요 수단으로써 기술 개발 시장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히트펌프 시장 동향과 우리의 포지션=히트펌프 관련 세계시장(2008년 기준)은 약 615억달러 규모로 매우 크다. 히트펌프 중 냉매유량가변형(VRF:Variable Refrigerant Flow)시스템은 2008년 47억달러 규모에서 2030년 120억달러로 성장이 예상되는 등 온실가스 저감 실현의 선도적 기기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대책일환으로 에너지 절약효과가 큰 히트펌프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 EU 등 대부분 OECD국가에서 10여년 전부터 10~25% 수준의 보조금 지원하고 있으며 EU국에서는 히트펌프 보급 시 수혜자인 전력회사에서 저리융자와 전력요금감면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고온용 및 고효율 히트펌프 집중개발 하는 한편 히트펌프 보급촉진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시범사업 및 교육 · 홍보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전까지 국내 전력가격이 석유류 및 가스 가격에 비해 높아 보급이 더디게 진행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전력가격이 석유류 등과 비교 시 상대적으로 낮아져 히트펌프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로 서울 타워팰리스 등 몇 곳 이외에는 거의 보급되지 못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히트펌프 보급량 중 90% 가깝게 가정용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기술 역시 부족하다. 국내 히트펌프 기술은 최근 개발이 활발한 편이나 글로벌 기술력 확보를 위한 특허경쟁력은 보유특허의 최신특허 비율이 62%로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특히 국내 냉매유량가변형(VRF) 히트펌프를 선도하고 있는 업체의 경우 고압력비에서의 고효율 압축기, 저착상 열교환기 등 중요 핵심기술 분야에서 최고 기술과 동등한 수준을 확보하고 있으나 다양한 솔루션 제공 등 해외 시장 인지도와 경험이 부족한 상태이다.
국내 히트펌프 냉온수기 선도업체는 관련 제품에 대한 적용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다양한 제품군의 시스템화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시스템 고효율화 및 최적제어를 위해서는 관련 핵심 요소기술과 통합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히트펌프산업 발전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는=전문가들은 고효율 히트펌프의 보급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이의 확대 추진을 통해 국내 시장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출을 위한 기술기준의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힌다.
최근 정부가 지열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히트펌프에 대한 보조금 지급 및 설치 의무화 사업 등을 통해 히트펌프의 보급 활성화와 기술 개발 지원 정책을 진행하고 있으나, 실제 전기요금 누진제 적용으로 인해 보급이 미진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시스템의 고효율화 및 최적제어를 위해서는 관련 핵심 요소기술과 시스템 통합 기술 개발이 요구되고 고효율 히트펌프의 보급 활성화를 위한 제도 확대 추진을 통해 수출 제품의 국내 레퍼런스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에어컨 등 세계적 선도 기술을 바탕으로 냉난방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수출전략 상품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VRF 히트펌프 시스템의 경우 현재 대비 20% 이상 고효율화로 일본의 경쟁제품 대비 경쟁력 우위 확보를 추진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절약 측면의 향후 시장과 기술 성장 잠재력이 큰 제품군을 우선 육성한다는 방침아래 고효율 히트펌프 냉온수기 개발을 통해 기존 보일러를 대체, 약 10%의 이상의 CO₂배출을 억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아울러 히트펌프 핵심부품인 고효율 압축기, 저착상 열교환기의 원천 핵심 기술개발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신냉매 및 신재생 열원과 연계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원천 기술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히트펌프 시장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현재 온도차에너지 중에서 지열원만을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해 설치비 등을 지원해주던 것을 하수 · 해수 · 하천수 등 모든 에너지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강남훈 지경부 기후변화에너지정책관은 “다음 달 발표할 신재생에너지원 재분류에서 하천수 등 모든 온도차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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