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칼럼]갑과 을의 IT프로젝트 상생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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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분야에서 볼 때 고객사는 갑의 입장에 IT 회사는 을의 입장에 있다. 이것은 대기업 그룹에 속한 IT 회사든 영세한 중소 규모 IT 회사든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아웃소싱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하려 할 때 여러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일단 업체가 선정돼 계약이 체결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종종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프로젝트 수행 업체를 선정하는 단계에서 제안사는 을의 입장에서 수주를 목표로 가능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고 자사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온갖 호언장담과 달콤한 설명을 하지만, 일단 선정돼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면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면 그때부터 을에서 갑의 입장으로 바뀌어 제안 당시의 내용과는 다른 서비스가 제공되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하려면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당시 이렇게 약속하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진실 게임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계약서를 아무리 찾아봐도 논쟁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다. 그래서 IT서비스를 제공받는 요즘 기업은 이런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제안 설명회 과정을 녹화해 보관하기도 한다.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심한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다른 솔루션으로 바꾸거나, 아예 IT서비스 업체를 바꾸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에 갑을 간 다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 최근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는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이 구축된 회사가 없어, 만도는 외국의 유명 컨설팅 업체와 ERP 구축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5개 사업본부에 ERP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기 전 IMF 사태로 인해 외국 컨설팅 업체가 철수했고, 만도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국 ERP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예전에는 잘 운영되던 시스템도 낡아서 툭하면 다운되고 시스템 효율이 매주 낮아 신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만도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모든 회사가 투자를 줄이던 2008년 가을에 글로벌 싱글 인스턴스(GSI) ERP를 새로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는 대부분의 회사가 미리 계획했던 투자도 취소 또는 연기하던 시점이어서 국내외 유명 IT 업체들이 수주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고, 덕분에 만도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리한 수주 경쟁에 따른 원가 부담이 커서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추가 비용 등이 상당히 문제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매주 조정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4개 업체의 책임자들과 회의 후에 매번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비는 순번을 정해 교대로 내도록 했다. 서로 부담감 없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만도도 순번이 되면 식사비를 냈다. 1, 2개월이 지나자 저녁 식사 시간이 우의를 다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각 업체 책임자들도 일주일 중 이날이 가장 기다려진다며 즐거워했다. 물론 불가피하게 일의 범위가 늘어나거나 투입 인원이 늘어나 약간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진 우의를 통해 프로젝트 기간 내내 서로 한 번도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고 결국 어려워 보였던 1단계 GSI 프로젝트를 당초 예산 그대로 계획된 일정 안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에 열심히 참여한 업체들에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지 않고 갑과 을의 관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다른 회사야 어떻게 되든 나만 손해 안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생은 요원한 얘기가 된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협력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박병옥 만도 정보기획실 상무 biopark@man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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