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 미세유체 응용화학단 김동표 교수팀은 최근 의미심장한 바이오 기술을 발표했다. 김 교수팀은 자유자재로 휘어져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필름형 초소형 실험칩 개발에 성공했다.
`랩온어칩(LOC · Lab-on-a-chip)`으로 불리는 이 기술이 재질이 얇고 휴대가 훨씬 간편한 필름 형태에서 구현되기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기존 실험칩은 실리콘 · 유리 · 플라스틱 등 딱딱한 재질의 기판에서 제작됐다. 반면에 김 교수팀은 일반 레이저를 이용해 머리카락 굵기의 초소형 도랑을 만드는 방식으로 400도 고온과 영하 269도 저온에 견디며 강한 내구성을 가지면서 자유자재로 휘는 랩온어칩을 구현했다.
전문가들은 필름형 랩온어칩 기술이 앞으로 첨단 과학 분야와 접목하면서 의료와 전자 등 산업계뿐 아니라 실생활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을 아무때나 알 수 있다면, 지갑이나 명함처럼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질병 진단 키트가 있다면. 수질 등 환경 오염 상태를 복잡하고 무거운 장비 대신에 누구나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만화와 영화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병원이나 진료소를 가지 않고 간편하게 질병 상태를 알 수 있는 `움직이는` 진료실 시대가 열렸다. 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이 바로 랩온어칩이다. 이는 연구소에서 시험하는 복잡한 실험을 손톱만한 작은 크기의 칩 위에서 간단히 구현해 준다. 문자 그대로 칩 위에 실험실이 올라와 있다는 뜻이다. 흔히 `칩 속의 실험실` 또는 `칩 위의 실험실`로 통한다.
구현 원리는 간단하다. 플라스틱 · 유리 · 실리콘 · 필름 소재 위에 10억분의 1ℓ에 해당하는 나노리터 이하의 미세 채널을 만든다. 여기에 극미량의 샘플이나 시료만으로 기존의 실험실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이나 연구가 가능하다.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기능을 구현하지만 키트 크기는 성냥갑 하나 정도로 작다. 랩온어칩이 상용화한데는 10억분의 1 나노 단위에 담아내는 초소형 정밀 반도체 기술(MEMS) 때문에 가능했다.
이를 상용화한 주역이 바로 반도체업체 ST마이크로다. ST마이크로는 처음으로 실리콘 디바이스 `인-체크`(In check) 바이오칩을 개발하면서 DNA 샘플을 정밀하게 가열 혹은 냉각해 증폭시킨 후 분석 물질을 평가하는 생물학적 프로토콜을 생성하는데 성공했다. 흔히 실리콘은 열용량이 낮으면서 열 순환 속도가 높아 빠른 시간안에 시료 성분을 분석해 낼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 덕분에 침 · 콧물 · 혈액 등 복잡한 생체 물질을 즉각적이고 경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 때문에 랩온어칩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차세대 진단 키트(Kit) 분야다. 이 칩을 이용하면 한 방울의 피로도 바이러스 확인에서 암 진단이 가능하다. 나아가 축산이나 환경 등 다양한 분야까지 응용 분야를 넓힐 수 있다. 랩(Lab) 수준의 이론에 불과했던 의료 진단 기술은 2000년 이후 바이오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2002년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부 선진국에서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한 상용 제품 생산에 성공했고 이어 유리와 실리콘 소재, 최근 필름까지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조류독감 등 신종 인플루엔자가 범람하면서 랩온어칩을 기반한 진단 키트 시장은 관심이 높아졌다.
병원 의료업계에서 랩온어칩은 이미 현장 진단(POCT)장비 개발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암 진단에서 백혈구, 적혈구 세포 개수 확인 등 임상 검사를 가장 빠른 속도로 알 수 있는 키트가 연이어 나오는 추세다.
진단 키트 기술의 하나로 랩온어칩을 주목하는 배경은 우선 편리함 때문이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질병 유무를 알 수 있다. 키트 하나로 맞춤형으로 질병 치료가 가능하다. 더 큰 이유는 검진 비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출 수 있다.
가령 한국인의 4대 사망 질병의 하나인 암을 보자. 암은 정확한 진단까지 비용은 물론이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암 중에서도 최근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게 유방암이다. 국내에서만 한 해에 1만명 이상의 유방암 환자가 생길 정도로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유방암 종류를 알려면 기존에는 70만~80만원 비용에, 분석 시간만 16~20시간이 필요했다. 유방암 진단을 위해 신체 조직을 평균 4번 떼어내야 하고, 분석 시간에는 각각 4~5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최근 개발에 성공한 랩온어칩 기반 키트를 쓰면 불과 10분의 1 이하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KAIST 바이오 뇌공학과 박제균 교수 · 김민석 박사 · 고려대 의대 이은숙 교수팀은 기존 진단 방식의 비용을 4만~5만원으로, 분석 시간은 10분의 1로 줄이는 새로운 유방암 종류 진단 기법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시장도 장밋빛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국은 2012년까지 연간 30%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시장은 크게 바이오칩 기기와 소모성 칩으로 나뉘는데 랩온어칩 기능을 접목한 바이오칩 기기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시장이 바로 단백질 칩 분야다. DNA칩이 주종인 지금 흐름은 내년을 기점으로 단백질 칩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바이오 칩으로 대거 넘어갈 전망이다. 최근에는 단백질과 펩타이드 전달까지 가능한 의료 제품을 개발해 세포 종류에 따라 최적의 시약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는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연구 기간을 대폭 줄여 줘 제약업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랩온어칩은 앞으로 의료뿐 아니라 농업 · 축산 ·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면서 차세대 융합 기술로 조명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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