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커스] 국내 줄기세포 연구 다시 시작

노화 원인 규명·원격 조종으로 신체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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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우울증.` 지난 2005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황우석 사태`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면서 붙인 비유다. 그 이후 적어도 한국에서 줄기세포는 `미래`나 `희망` 같은 긍적적 이미지보다 좋지 않은 이미지로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2000억달러의 연구자금을 투자하고, 일본도 `스타 연구자`인 신야 야마나카 박사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우울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황우석 사태 이후 미국 · 일본 · 유럽 등에 비해 크게 뒤쳐졌던 국내 줄기세포 기초 · 임상연구에서 잇따라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정부도 다시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을 시작했다.



강경선 서울대학교 교수팀은 최근 성체줄기세포의 노화가 기존에 생각했던 선천적인 유전자 결함이 아닌 후천적인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성체줄기세포의 노화가 유전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다른 요소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강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노화 조절이 염색체상의 폴리콤브(polycomb) 단백질과 JMJD3단백질의 역할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또 줄기세포의 노화와 관련한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마이크로RNA 3개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도 성과다. 그동안 노화 조절과 관련한 마이크로RNA의 종류와 줄기세포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선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성체줄기세포 노화 메커니즘 규명의 의의는 작지 않다. 아직 임상에 적용하기는 이른 배아줄기세포나 iPS(유도만능줄기세포)와는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상용화 문턱에 와 있다. 하지만 배양이 어렵고 쉽게 노화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노화 메커니즘 규명으로 성체줄기세포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노화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었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인간이나 줄기세포나 노화가 `세포 재생 부진의 문제`라는 점은 같다”며 “인간의 노화는 줄기세포의 숫자 및 기능 저하와 깊이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줄기세포 노화 문제를 해결하면 인체의 노화 자체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손영숙 경희대학교 교수팀은 줄기세포를 `원격 조종`해 손상된 신체의 복구를 돕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줄기세포를 외부로부터 추출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 반면, 인체 내의 골수에서 손상된 신체 부위로 이동하도록 조절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손 교수팀는 `허혈성뇌손상(뇌졸증)`을 타깃으로 삼고 `Substance P`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정맥에 투여해 줄기세포를 유도하는 기전을 규명해 낸다는 계획이다. 손 교수는 “척추 손상이나 방사선에 의한 조직 손상에는 이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손 교수는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줄기세포 선도연구팀` 책임 교수다. 황우석 사태 이후 눈에 띄지 않았던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이 비로소 재개됐다. 교과부는 올해만 6개 팀에 10억원 씩 총 60억원을 지원하고 3년 뒤 평가를 통해 우수연구팀에게는 연간 15억~20억원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 5년 후 최종평가를 통해 선정된 최우수팀은 추가 3년간 30억~50억원을 집중 지원한다.

손 교수는 “미국의 경우 줄기세포 기초연구에 대한 막대한 양의 체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고, 병원과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기초연구가 임상과 연계돼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연구도, 시장전략도 부족한 상황이다. 교과부의 이번 지원은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민간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대표적 줄기세포 관련 민간업체인 메디포스트(대표 양윤선)는 최근 알츠하이머형 치매치료제인 `뉴로스템(NEUROSTEM)-AD`의 제1상 임상시험 신청서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했다. 이번 신청이 승인되면 내년 초에 임상시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 치료제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로 뇌신경세포의 사멸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며 “제대혈에서 수집한 간엽줄기세포의 배양과 이식 등을 통해 뇌속의 신경전구세포를 일반 신경세포로 분화, 치매의 원인 물질을 감소시킬뿐 아니라 신경 재생과 같은 근본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