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칼 빼드나…대기업 `정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납품단가 인하 강요, 기술탈취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발생하는 불공정한 상거래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가운데 중소기업은 부도위기에 내몰리는 기업간 격차를 바로잡아 대기업ㆍ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선진 기업 문화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취지다.

공정위 주변에서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최근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특별점검을 지시한 만큼 주요 대기업을 상대로 불공정 행위가 없었는지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공정위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이 특별조사단을 직접 지휘하는데다 공정위는 물론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노동부, 중소기업청까지 망라돼 이미 전국의 11개 공단 1천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사전조사까지 마친 터여서 이번 특별조사의 심각성을 가늠케 하고 있다.

◇대기업 ’최대호황’ vs 中企 ’부도위기’=최근 공정위와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 등에는 중소기업들로부터 심각한 불만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고 한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발표하자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중소기업들이 거세게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도위기’라는 중소기업의 아우성이 커지자 급기야 정 총리는 지난 9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선진 기업문화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면서 “지식경제부와 공정위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중소기업 실태와 애로를 꼼꼼히 점검해 필요한 개선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정 총리는 또 최근 국무회의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LG 등이 호황을 누리며 한국경제의 경기를 끌어가고 있으나 그 혜택이 중소기업까지 골고루 퍼지지 않아 체감경기가 양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지려면 기업문화가 갑(甲)과 을(乙)의 관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고위직인 사무처장이 나서 ‘대.중소기업 거래질서 확립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단은 재정부, 지경부, 노동부, 중기청, 호민관, 전경련 등 경제5단체를 망라한 민관 전문가들로 짜졌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판단한다는 방증이다.

◇조사 대상과 방법은=특별조사는 △실태조사 △직권 현장조사 △제재 및 제도개선의 순으로 진행된다.

우선 실태조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매년 해오던 기업상대 실태조사를 ‘특화한’ 방법에다 범정부 차원의 별도조사를 각각 진행한 뒤 서로 합치는 방식이다.

우선 공정위는 올해 초부터 10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서면 실태조사’를 특화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또는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를 강요했는지 여부를 중점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점검 대상 불공정 행위는 납품 단가 인하 강요, 대금결제 지연, 기술탈취 등이다.

여기에 재정부, 지경부, 노동부, 중기청, 호민관 등 범정부 차원에서 이미 구성한 ‘중소기업 현장점검단’을 통한 실태조사도 병행된다. 현장점검단은 이미 전국 11개 공단 소재 1천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방문조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불공정 행위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문제점을 망라해 관계부처가 현장 방문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실태조사가 마무리된 직후인 8월부터는 불공정 행위 혐의가 있는 업종과 대기업을 지목해 대대적인 현장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정조준’할까=최대 관심은 삼성, 현대차, LG 등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들이 직권 현장조사를 받게 되느냐의 여부다. 이에 대해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기업들이 막대한 순익을 낸 것 전체를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된다”면서 “다만 이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가 있었다면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어느 기업이 조사를 받을지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업종으로 치면 제조업이 집중조사 대상이 될 것이며, 어떤 대기업이라도 혐의가 드러나면 예외없이 대대적인 조사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특별조사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문제로부터 촉발된 것인 만큼 상당수의 대기업이 공정위의 조사를 피하기 힘들 것이란 게 중론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만 “하도급.하청을 매개로 한 기업간 불공정 행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업체인 1차 하청업체와 중소기업인 2차 이하 하청업체 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도개선에도 박차=공정위는 ‘기업 양극화’가 심화하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하청업체가 납품단가 인하를 요청하면 10일내에 협의를 개시해 30일내에 합의해야 하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를 대폭 개선, 합의까지의 기간을 15일 내외에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하청업체가 개발한 신기술에 대해 정당한 사유없이 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없도록 하되, 요청할 때도 반드시 서면으로 하도록 관련 법규를 바꿀 계획이다.

특히 기술자료 제공요구 목적, 비밀유지 의무 등을 서면으로 명시해 하청업체 또는 중소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한다는 게 공정위의 복안이다.

아울러 현재 26개 재벌기업이 5만6천개 하청업체와 체결한 ‘상생협력’ 협약을 확대하는 동시에 이를 ‘1차-2차 하청업체’간에도 확산시킬 계획이다.

[연합뉴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