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게임이론을 설명할 때 ‘죄수의 딜레마’라는 에피소드가 자주 인용되곤 한다. 두 명의 죄수가 따로 격리되어 취조를 받으면서 죄를 시인하면 감형이 되고 두 명 모두가 죄를 부인하면 아주 가벼운 벌이나 무죄가 될 수 있으나 만일 한 명이 시인을 하고 다른 한 명이 부인을 하면 그 부인한 사람은 무거운 벌을 받는다는 설정이다. 두 죄인은 각각 어찌할지 많은 고민을 하지만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필경 둘 다 죄를 시인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현실세계에서도 많은 동종 사업자들이 서로 불신 속에 경쟁하면서 뻔히 내다보이는 손해의 내리막길을 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이 게임이론의 타당성이 증명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 통신사업자들의 케이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수의 사업자 모두가 수조원을 들여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경쟁했으나 한정된 재원으로 완벽한 것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만일 여러 개의 불완전한 네트워크 대신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한 개의 더 촘촘하고 빠른 네트워크를 만들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면 사용자도 좋고 통신사업자들도 수조원의 비용이 절감되어 그 재원을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네트워크 전쟁이 지나가자 곧이어 보조금전쟁으로 이어졌다. 작년 한 해만 해도 통신 사업자들이 물경 8조6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보조금에 쓰면서 전체 가입자의 40%가 매년 새로운 단말기를 찾아 움직인다. 물론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보조금 덕분에 단말기 판매가 호황을 이루어 많은 수익을 냈으나 오히려 그러한 ‘쉬운 수익’에 안주를 하며 새로운 기술개발을 소홀히 하다가 애플과 구글로부터 ‘스마트 폭탄(bomb)’을 맞고 말았다. IT강국이라 일컬어졌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지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통신사업자 요구에만 응대해왔던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은 뒤늦게 스마트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이미 앞선 선진 업체들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요사이는 새로이 ‘단말기 전쟁’에 돌입한 느낌이다. 어느 제조사의 스마트폰이 얼마나 더 좋은지 하는 것을 비교 평가하느라 언론들마저 호들갑이다. 그런 고가의 스마트폰들을 통신사업자들이 ‘대리판매’를 하면서 이번엔 턱없이 높은 보조금을 앞세워 걷잡을 수 없는 ‘소모적 경쟁’을 다시 한 번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단말기전쟁은 길어보았자 6개월도 안되어 차별성은 사라지고 모두가 상처만 입고 끝나는 무의미한 결말을 가져올 뿐이다.
이제 그런 외형적이고 하드웨어적인 경쟁을 떠나 진정 고객을 위한 경쟁이 필요한 때다. 바로 고객에게 가치를 되찾아 주는 경쟁이다. 한 사람의 고객이 집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이동 중일 때 그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 서비스의 가치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이 진정 통신사업자들이 할 임무인 것이다.
다행히 요사이 통신사업자들이 고객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요금감면이나 서비스 개선 등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10년이 넘는 지리한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해 고객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결과로 더 많은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고객은 물론이고 통신사업자들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 게임’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철 LG U+ 부회장 leephd@lgu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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