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일본의 제조업 운영 컨설팅 기업과 합작해 공급망관리(SCM) 솔루션을 제공하는 조인트 벤처를 일본 현지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상장 회사이기도 한 이 제조 대기업과 함께 일하면서 일본 SCM 컨설턴트뿐만 아니라 일본 제조업 SCM 운용 담당자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국내 전자 대기업의 차별화된 운영 경쟁력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SCM 측면에서 보자면 고객을 속도 경영의 중심에 두고 고객 대응력 강화, 글로벌운영지휘센터(GOCC)를 통해 신속하게 합의되는 SCM 의사결정, 그리고 SCM 시스템 운용 능력 등이 해당한다고 하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전자 대기업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세계 TV 시장 선두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가전제품과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술이나 제품력에서 뒤지지 않은 일본 기업은 그 이유를 SCM에서 찾고 있다.
10년 만에 세계 전자산업의 리더로 부상한 국내 대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제치고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SCM 경쟁력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이것이 가능했던 원인이 무엇인지 벤치마킹해 실행에 옮긴다면 국내 다른 기업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SCM의 주체는 단순하게 구분하면 고객사·기업·협력업체다. 이 가운데 ‘기업’을 구성하는 주체들을 각 기능별로 보면 연구개발(R&D)·영업·생산·구매 등이 있다. 전자를 외부 환경이라 하고 후자를 내부 환경이라 했을 때 이 두 환경을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려고 하는 것이 SCM의 목표다.
국내 기업들은 고객사 영업을 일본 기업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량 주문, 긴급 주문 그리고 고객주문형 제품에 대해서도 훨씬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규모면에서 전 세계 1등인 국내 한 가전 기업은 여러 고객의 소량 주문을 모아 한 컨테이너에 혼적 배송하는 등 최상의 고객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별로 특화된 제품을 만들며 신흥 시장인 인도, 남미, 중국에 중점을 두고 SCM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제품의 가격과 기능에 따라 나라마다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해 해당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반면 고객 대응에 주력하다 보니 제품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생산, 자재 조달, 배송 등 SCM 환경이 복잡해지는 결과도 낳았다. 그렇지만 SCM 운용 복잡성을 이유로 제품 경쟁력을 낮추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운영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복잡한 외부 환경의 SCM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 제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앙 집중화된 내부 SCM 운용 체계를 만들어서 일별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이뤘다. 또 영업, 생산, 구매 등 조직 전체를 조율하고 관리할 수 있는 GOCC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 제조 기업은 내부 조직 간 업무 분담이 명확히 규정돼 있어서 기업의 운영은 안정적이지만 급변하는 국제 비즈니스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은 국내 전자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는 실정이다. 일본 기업들에 국내 기업의 GOCC에 대해 설명하면 이들은 일본 기업에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SCM의 성공적 운용을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판매 정보, 단위 공장별 생산 정보, 배송 정보와 같은 다양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내 전자 대기업은 일본 기업과 비교했을 때 이러한 SCM 정보를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보의 가공 능력을 강화하여 올바른 경영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재고자산회전율과 배송납기만족도 같은 지표를 전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시장에서 변화가 생겼을 때 신규 제품의 시장 진입을 보다 신속하게 실행하고 기존 제품에는 과다한 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별 관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일본 제조업은 국내 제조업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경영 체계를 갖췄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라고 일컫는 현재는 차별화된 기술로 다른 기업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공급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시장 상황에 맞는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국내 전자 대기업의 운영 프로세스가 강점이 있다.
류동식 자이오넥스 대표이사 dongsik_yoo@zione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