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결제망 이용과 관련해 벌어지는 은행과 증권사 간 대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증권사들이 개별 은행과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결제망 분담금이 과도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것과 관련해 은행들이 증권사들을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나섰다.
증권사들이 결제망에서 퇴출되는 등 최악 상황이 현실화하면 증권사 카드로 은행 ATM(현금 자동 입출금기)의 현금 인출 등이 제한되는 등 파장이 확산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금융결제원 상급 기관인 한국은행이 중재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무산돼 두 업종 간 법적 대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1일 은행들은 은행연합회에서 회동을 하고 증권사의 공정위 제소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참가기관으로 지급결제망에 참여하고 있는 25개 증권사 제명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금융결제원 정관 10조에는 총회 결의를 위반하거나 기타 결제원 목적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제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위해서는 총회원 3분의 2 이상에게서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회원은 한국은행과 10개 은행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은행이 제명을 추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당초 25개 증권사는 지급결제망 사용을 위한 분담금으로 4005억원을 제공하기로 금융결제원과 합의했다. 분담금에는 자동화기기 공동망 참여비용과 타행환, 지로, 전자금융, CMS망 참여비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 한국은행 기관운영감사에서 지급결제망 이용료가 과도하게 책정됐다고 지적하자 증권사들이 이를 근거로 내세워 분담금을 800억원 수준으로 인하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결제원과 은행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증권사들은 공정위에 금융결제원과 은행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소하면서 갈등이 점차 고조됐다. 금융결제원이 지급결제망 이용을 위한 분담금을 과다하게 산정해 증권사의 신규 진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 ATM은 4만9000대지만 증권사 ATM은 500여 대에 불과하다"며 "증권사들 주장은 한마디로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증권사가 지급결제서비스를 시작해도 시장에서 반응이 없자 초조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이 25개 증권사 제명을 추진한다면 증권사 서비스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고객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통한 입출금, 이체, 공과금 납부, 인터넷뱅킹 등 이용에 제약을 받는다.
증권사들은 일단 이전처럼 CMA 연계 가상계좌를 은행에 따로 개설해야 한다. 하지만 가상계좌로는 공과금, 휴대폰 요금 등에 대한 자동이체 출납을 할 수 없고 증권사 고객 간 송금도 불가능하다.
또 입출금 서비스도 은행권은 거의 24시간 가능하지만 증권사 가상계좌는 오후 10시 이후부터 오전 7시까지는 이용할 수 없다.
지난주 말 기준으로 전체 CMA계좌 수는 1008만좌로 이 가운데 지급결제망에 참여하고 있는 계좌는 1000만좌 정도다. 이들 계좌가 일시에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면 대규모 혼란과 고객들 불편이 야기될 수 있다.
[매일경제 손일선 기자 / 성원경 뉴스속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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