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출현으로 시작된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가 매일 여러 매체에 오르내리는 요즘, 또 이런 이야기를 화두로 꺼내는 것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이번 변화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기업의 전통적 정보기술(IT) 개발 현황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 기업들의 IT 조직 안에서는 과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많은 시도를 했고 또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식스 시그마를 모르면 따돌림을 당하고 프로세스혁신(PI), 업무프로세스(BP) 등 수많은 약자를 쓰면서 그런 단어들을 입에 올려야 무엇을 좀 아는 듯 받아들여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기업의 IT 프로세스가 20년 전보다 획기적으로 변한 것일까.
나는 은행 창구에서 환전 같은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10년 전 프로세스와 지금의 프로세스가 그렇게 많이 달라졌을까. 아직도 우리는 은행원이 내미는 종이에 계좌번호를 적고 금액을 한글로 쓰고 날짜를 적고 사인을 하거나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다는 내용의 또 다른 종이를 작성해 제출고 비밀번호를 확인받고 나서야 원하는 화폐로 바꿀 수 있다. 한 번은 은행원에게 왜 두 번씩 종이를 작성하느냐고 했더니 하루 업무가 마무리되면 그 두 가지 종이로 서로 맞추기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내가 쓴 두 종이를 왜 맞추는 거냐고 했더니 그게 규칙이라고 했다. 지난 20년간 그렇게 해 왔다고 했다.
이 예가 우리 기업들의 IT 프로세스를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몰고 오는 혁신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면 그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다. 기업의 프로세스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디자인되고 IT가 그것이 가능하도록 방법을 제공해 왔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 프로세스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한다. 궁극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역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전통적 사고는 기업 내부의 프로세스가 이러이러하니 거기에 맞춰 고객이 해야만 하는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서비스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프로세스를 새로 만들어 기업에 적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업 내부의 프로세스는 파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의 IT 프로세스를 이러한 새로운 관점의 서비스 모델로 바꿀 수 있을까. 더구나 그런 사고와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기존의 IT 인력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생각과 사고가 바뀔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때문에 고객들의 눈높이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간다. 이것은 우리 기업의 전통적 프로세스에 익숙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위기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기업의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IT 관점의 방법론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모든 프로세스를 작은 단위의 독립적 서비스 단위로 분리해 보자. 환전의 핵심이 무엇인지, 예금 인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연관 관계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엮지 말고 따로따로 놓아보자.
둘째, 기업의 프로세스는 이러한 작은 단위의 모듈을 모아놓은 앱스토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들 하나하나의 소단위 프로세스가 궁극적으로 고객들의 서비스 주문을 만족시키는 애플리케이션이 될 수 있다.
셋째, IT 개발자들에게 이들 단위 단위의 애플리케이션을 서로 경쟁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자. 마치 좋은 아이디어로 앱스토어의 킬러 앱을 만드는 것처럼 큰 보상을 하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인 창의성으로 몰두할 것이다.
넷째, 고객들에게는 이러한 애플리케이션이 메뉴같은 체계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구글 검색창이나 음성 명령 등과 같이 아무런 지식 없이도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제공해 보자.
위에서 언급한 방법이 기존의 모든 기업 프로세스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이 큰 변화의 한 과정에 조금은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언제나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서서히 변화의 물결에 밀려 도태하느냐다. 이젠 IT 프로세스 혁신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추락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김정태 삼성증권 정보시스템팀 고문 eric.j.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