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전기차, 中에도 추월당한다

저속차량 시판 한달동안 겨우 20대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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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전기차산업이 피기도 전에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기대를 모았던 저속전기차(NEV)가 초기 시장 진입에 실패한 가운데 우리 정부의 전기차 보급정책은 경쟁국보다도 1∼2년 뒤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기차업체 CT&T는 지난달부터 도로주행이 허용된 저속전기차 ‘이존’의 시판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전기차 판매대수는 조달청에 납품한 20대가 전부다. CT&T는 올해 지자체, 공공기관에 저속 전기차 5000대를 판매할 계획이지만 비싼 차값과 짧은 주행거리, 납축배터리 공해문제를 고려할 때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CT&T의 저속 전기차가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자 AD모터스 등 여타 중소 전기차 업체의 생산일정도 연달아 차질을 빚고 있다. 전기차 업계는 올해 안에 정부의 보조금 제도가 실시되지 않으면 상당수 전기차 제조사들이 차량 양산도 못해 보고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우리 정부는 하이브리드카는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전기차는 아예 지원대상에서 빼놓았다. 환경부는 오는 8월 전기차 시범운행 사업을 해보고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나마 실제 예산집행은 내년 이후로 잡고 있다. 우리 정부의 전기차 보급정책은 일본·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뒤처진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항저우·창춘·선전·허페이 5개 도시에서 올해부터 2년간 전기차 구매자들에게 6만위안(1050만원), 하이브리드카 구매자는 5만위안(약 88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전기차 제조사들은 기술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지원이 많은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계획을 적극 추진 중이다.

 정부의 미온적 정책과 함께 완성차업체의 안이한 상황인식도 전기차 시장 활성화에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부는 2015년까지 세계 4위의 그린카 강국을 만든다는 목표하에 막대한 예산을 전기차 개발사업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 지원을 거의 독식하는 현대기아차와 계열사들이 전기차 생산 및 보급에 극히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현대차는 오는 8월 전기차 i10을 30대 선보이고 내년에는 300∼500대를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닛산·폴크스바겐 등 외국 완성차업체의 전기차 생산계획과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규모다. 미국의 CSM 월드와이드가 지난달 발표한 2015년 세계 전기차 전망치에는 르노닛산(30만대), 폴크스바겐, 푸조시트로앵, BMW, 다임러, 미쓰비시, 포드 등이 주요 제조사로 나오는데 한국 자동차회사는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근 해외시장에서 전기차의 기술혁신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시장 진입을 계속 늦추다가는 치명적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달 일본의 JFE 엔지니어링은 단 3분 만에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획기적인 성능의 급속충전기를 연내 시판한다고 발표했다. 일반 자동차의 주유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전기차 배터리 재충전을 완료하는 셈이다. 닛산은 전기차 판매를 위해 전국 2200여곳의 자동차 딜러에 전기차 충전기를 보급한다고 밝혔다. 외국에서는 실용성을 갖춘 전기차 시장이 이미 열리고 있는데 한국 자동차업계는 전기차는 아직 멀었다면서 큰소리만 치는 형국이다.

 원춘건 전기자동차산업협회장은 “전기차 내수시장이 열리지 않고 정부 지원도 미비한 상황에서 회원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친환경 전기차 시장을 외국에 뺏기지 않도록 정부정책의 대폭적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