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날로그 반도체 산업은 출발이 늦었다. 한발 앞선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인 미국 TI는 국내서 연간 1조원에 이르는 매출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시장 가능성을 보고 도전에 나선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이들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1648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아날로그 반도체 산업 규모는 2년 만에 매출액 3856억원으로 커졌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된 아날로그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가 올린 매출은 345억원에서 1177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국내 산업 규모의 성장은 실리콘마이터스, 아이케이세미콘, 동운아나텍 등 국내 주요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의 비약적인 실적 개선에 따른 것이다.
LCD용 전력용 반도체 칩(PMIC) 설계 업체 실리콘마이터스의 지난해 매출은 244억원으로, 국내 아날로그반도체 기업 중 처음으로 200억원을 돌파했다. 이 회사는 올해 휴대폰, 발광다이오드 등으로 사업을 확대, 45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다. 허염 사장은 “경쟁사보다 앞서 제품을 출시한 것이 주효했다”며 “아날로그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마이터스는 지난해 세계반도체연맹(GSA)으로부터 ‘주목할 기업(Start-Up to Watch Award)상’을 받았다. 국내 기업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실리콘마이터스가 처음으로 아날로그 반도체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는 하지만 국내 벤처 기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운아나텍은 지난해 LED 구동칩과 아날로그 스위치를 설계·판매해 약 110억원의 매출 성과를 냈다. 지난해 LED 구동칩 등 신규 개발 칩 양산이 조금 늦어져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전년에 비해 10% 증가한 결과다. 김동철 동운아나텍 사장은 “반도체 경기가 다시 살아난만큼 올해는 2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자신한다”고 밝혔다.
아이케이세미콘도 지난해 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최근 정체기를 맞고 있지만 올해 LED구동 드라이브칩 등 품목을 다양화하면서 다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디엠비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8년 35억원에 비하면 세 배 이상 성장했다. 전원을 바꿔주는 인버터 칩과 직류-교류(AC/DC) 전환칩 등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올해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두 배 상승한 200억원으로 수립, 고속 성장을 예고했다.
이 같은 아날로그 반도체 전문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시스템온칩(SoC)을 추구하면서 아날로그 블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날로그 기술이 없으면 디지털 제품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파운드리 기업인 동부하이텍도 아날로그 반도체 사업을 중점 육성하고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서 고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루 후터 TI 부사장 등 외국계 업체에서 아날로그 분야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는 한편, 공정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부는 정부 지원과 기업들의 협력을 통해 지난 2008년에는 TSMC, UMC 등에 앞서 0.18미크론급 복합고전압소자(BCDMOS) 공정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올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한 월 평균 약 1만장(8인치 웨이퍼 기준)을 계획하고 있다. 동부의 아날로그 반도체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강한 의욕을 갖고 추진 중인 사업으로 김 회장은 동부하이텍 지원을 위해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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