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빅3 법칙` 디지털세상도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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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이 나려고 해 애써 참았습니다.”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최근 그 동안 사용해 온 TV 금형을 모두 팔았다. A 사장이 받은 돈은 불과 1000만원. 무려 10억원 가량을 투자해 개발한 LCD TV용 금형을 사실상 고철값보다 조금 더 받고 판 셈이다. 22·24·32인치 등 한때 반짝반짝 빛나는 TV 사출을 찍어내던 금형을 막상 헐값에 넘기려 하니, 울컥했던 것이었다. 금형을 넘기는 순간,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애지중지 키운 예쁜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 송아지를 팔고 난 직후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는 농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지난 2007년 이후 한국 TV산업의 허리는 사실상 끊어졌다. 중견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하나 둘씩 TV사업에서 손을 털었다. 코스닥시장에서 디지털TV 제조사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생존을 위해 수익이 남는 사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TV사업에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실감한 탓이다. 선결제를 요구하는 LCD 업체들의 요구와 AS 발생비용 등은 중소기업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TV 한 대 팔아 1만원 남기는 데 무슨 수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은 중소 TV제조사가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한국 TV산업에서 중소기업들의 기반이 약해지는 걸 보니 안타깝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중소 TV업체들의 역할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같은 TV제조사들의 생계형 사업전환은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보여주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중소 TV업체들이 처한 현실은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TV뿐 아니라 상당수 국내 내비게이션·PMP·MP3플레이어 등 다른 산업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디지털 기술은 세상을 급변시키고 있다. 산업의 생태계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규모의 경제실현 여부는 생사를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는 중이다. 요즘 TV뿐 아니라 디지털 기기 시장은 ‘빅3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궁극적으로 상위 3개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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