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연구기관 40여 곳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큰 한국원자력연구원 양명승 원장의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연구원 창립 50년 만에 터뜨린 연구로 요르단 수출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연말 기적처럼 만들어낸 400억달러 UAE 원전 수출로 인해 국민 관심이 원자력 연구개발(R&D)에 쏠리고 있다. 올해도 곳곳에서 ‘대박’ 조짐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양 원장의 위상도 자연스레 업그레이드됐다.
양 원장은 사실 마주 대하는 사람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남을 배려하는 겸손함과 상황을 꿰뚫는 직관력, 한번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아무도 막지 못하는 풍부한 식견 때문이다.
지난해 터뜨린 ‘수출 대박’도 그의 능력이고, 복이었다. 원자력계 원로들이 R&D라는 씨앗을 뿌려 잘 키워 놓았고, 양 원장이 열심히 열매를 수확한 결과다. 그의 성실함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일궈낸 성과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밤(한국시각)을 잊지 못한다. 요르단으로부터 최종 원자로 건설사업의 최우선 협상대상자 선정 소식이 전해지던 날이다. 그날 양 원장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했다. 애꿎은 담배만 연방 피워댔다. 저녁 8시께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감회에 젖은 표정이 드러났다.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양명승 원장은 “올해 예감이 좋아 좋은 일이 많이 터질 것”으로 기대하며 2010년에 대한 기대와 각오의 일단을 내비쳤다.
-요르단으로부터 사상 처음으로 원자력 시스템을 수주했는데,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고급 인력입니다. 기획재정부에 정규직 20명을 우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중소형 원자로 개발사업인 스마트(SMART) 프로젝트의 계약직 40명을 따로 선발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단 선발하면 10년 정도 가는데다 정규직과 차이가 거의 없는 조건이어서 경쟁률도 높습니다. 원자로의 표준설계 인가는 2011년 마무리되지만 국내 건설 기간까지 합치면 족히 7년은 한 분야에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오는 2030년까지 세계 원전수요는 400GW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통상 원전 1기당 1GW로 추산해도 400기가 지어진다는 계산입니다. 당장 국내 원전 6기도 지어야 할 것이고, UAE 수출원전 4기도 곧 설계에 들어갑니다. 원전 설계는 금방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졸업 후 3∼5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쪽저쪽 인력수급 문제가 대두하지요.
우선은 퇴직자 활용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궁여지책으로 두 번째 생각한 것이 부원장 시스템 도입입니다. 부족한 인력을 설계부와 PM조직에서 공동으로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향후 80기의 원전을 수주한다고 볼 때 건설인력을 빼도 3000∼5000명의 고급 인력이 필요합니다. 서둘러 대책안을 마련해야지요.
-한국원자력연구원 용지가 협소해 제2 연구원 설립이 긴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치선정은 어떤 상황인가요.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이나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에는 모두 실증로가 필요합니다. 성능 실증을 위한 SMART 1호기와 동위원소 전용로 건설을 위해서도 당장 용지가 있어야 합니다. 올해 용지를 선정, 착공하더라도 완공하는 데 4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봐도 소듐냉각고속로와 사용 후 핵연료 건식처리 공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5∼10년 뒤 어차피 용지가 필요한 상황이고요.
제2 연구원 위치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동위원소 전용로와 제2 연구원을 모두 한곳에 건립하되, 연구로 열을 식힐 해수나 담수가 있어야 합니다. 새만금 지구는 이야기가 나오다 지금은 쏙 들어간 상황이고, 부산 기장군이 동위원소 전용로 용지 제공 의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북 대구는 울진·영덕 에너지 단지조성 차원에서 제2연 구원 유치 희망 공문을 공식적으로 보내온 상황입니다.
교과부도 신중히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년까지는 결정해야 합니다. 동위원소 전용로 건은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설계에 2년, 건설기간이 3년 정도 걸리니, 적어도 내년에는 결정해야지요.
-올해 연구용 원자로 수출 전략은 어떻게 구사할 계획인가요. 최근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원자로 공동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는데.
▲대형 원전은 한전에서 수행하니 놔두고 중소형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내년까지 SMART 1호기의 설계 인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 1호기가 실증에 들어가면 카자흐스탄과 UAE가 제안한 조인트 벤처 설립도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SMART는 대부분의 국가가 R&D 단계여서 성능 실증작업이 마무리되면 블루오션이 될 것입니다. 330㎿짜리 원전을 지으면 전기는 100㎿ 정도 생산하기 때문에 지역난방도 가능하고, 해수 담수화도 가능합니다. 또 원전은 대부분 쌍으로 짓기 때문에 중소형 원전 시장은 밝다고 봅니다.
인도에는 20여 기가 있는데, 대개 100∼300㎿ 규모입니다. 본래 인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되지 않아 협력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미-인도 협력협정으로 인해 원자력 분야에서 공동보조를 맞추는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해 말 주한인도대사가 연구원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연구용 원자로는 남아프라카공화국도 관심 많습니다. 제안 내용 등을 우리에게 보낸 뒤 응찰해 달라는 요청도 해왔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2011년 연구용 원자로 타당성 평가에 들어갑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함께 건립하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태국도 가능한 시장입니다. 태국은 현재 연구용 원자로를 짓다 멈춘 상태입니다. 지난해 수주에 실패한 80㎿급 네덜란드 팔라스 연구용 원자로 수주도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인밥이 최저가로 우선협상자로 선택됐으나 협상이 중단된 상태여서 재입찰 여지가 큽니다.
-올해 연구원이 수행할 R&D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원자로를 수출하더라도 자체 기술을 우리나라가 확보하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요.
▲우선 지식경제부와 논란이 있던 R&D 문제는 정리가 됐습니다. 원자력연은 3∼5년짜리 단기과제보다는 중장기 과제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육과학기술부 소속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정부가 내린 것 같습니다. 다만, 기술이전은 제도적인 개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원자력연도 표준설계가 끝나는 대로 중소형원자로를 모두 기업으로 넘길 계획입니다. 대우건설과 공동 수주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에서는 원자로 집합체 및 반응도 제어장치, 1차 냉각계통 및 연결계통, 계측제어 계통 등 원자로 및 계통 기본설계를 10월까지 완료한 뒤 2012년 3월 상세설계를 마무리짓습니다. 지난해 수주한 태국 연구로 TRR-1 계측제어계통 교체 자문사업과 그리스 연구로 GRR-1 냉각계통 개선사업 등 노후 연구로 개선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SMART는 올해 원자로 노심과 원자로 냉각계통 및 안전 계통의 표준설계를 수행하고, 모든 개별효과 검증시험을 완료하는 등 기술 검증을 수행할 계획입니다. 나노 및 바이오 구조분석 연구에 필수적인 냉중성자 산란장치 7기도 올해 구축합니다. 이외에 양성자 가속기 구축과 관련해 오는 4월 가속기동 및 연구지원시설 공사에 들어가고, 11월엔 20MeV 가속장치를 경주로 이전합니다.
◆원자력연 수출형 조직으로 탈바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원자로 수출에 초점을 맞춰 조직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R&D와 수출 부문의 전략적인 대응을 위해 두 명의 부원장 체제를 전격 도입했다. 요르단 연구로 건설 사업체제 구축을 위해 연구로사업단을 새로 만들었다.
이번 조직개편 내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연구용 원자로 수출 등 중점사업의 효율적인 추진과 연구 부문별 총괄·조정 기능 강화에 키포인트가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기존의 선임본부장 직제를 없애는 대신 전략사업 부원장과 연구개발 부원장을 신설하는 등 부문별 부원장 체제를 도입했다.
신설된 전략사업 부원장은 연구용 원자로 수출,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 개발 등 단기 중점사업을 책임지고 총괄 조정하게 된다. 연구개발 부원장은 중장기 원천·기초 및 산업기술 관련 부분을 총괄하며 책임지는 구조다.
지난해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수주로 물꼬를 튼 연구로 수출 사업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연구로사업단도 신설했다. 오는 2월 이후로 예상되는 요르단 연구로 건설 정식 계약 체결 이후 본격적인 사업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연구로 수출 사업의 세부 분야별로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로 수출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연구로공학부를 폐지하고 연구로핵연료개발부, 연구로설계부, 요르단연구로사업부를 연구로사업단 산하에 신설, 배치했다.
◆양명승 원장은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KAIST(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박사)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뒤 1984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소했다.
핵연료개발부장, 사용후핵연료기술개발부장, 건식공정핵연료기술개발부장을 역임한 핵연료주기 기술 개발 전문가다. 지난 2007년 11월 28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제17대 원장에 취임해 국내 유일의 원자력 종합 연구기관을 이끌고 있다.
1984년부터 핵연료 국산화 사업에 참여, 국산 핵연료의 품질 검사 및 품질 관리 기술 개발을 이끌어 중수로 핵연료 및 경수로 핵연료에 기여했다. 1991년부터는 경수로에서 쓰고 난 사용 후 핵연료를 직접 재가공해서 중수로에서 재사용하는 듀픽(경·중수로 연계 핵연료) 기술을 세계 최초로 창안, 우리나라가 독창적인 핵연료주기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핵연료 R&D에 관한 한 국내 1인자라고 해도 손색 없다.
2000년부터는 미국 주도로 착수한 제4세대 원자력 시스템(GEN-Ⅳ) 국제 공동연구와 GEN-Ⅳ 핵확산저항성·물리적 방호(PR/PP) 전문가 회의 등에 핵연료주기 분야 한국 대표로 참여, 국내 원자력 연구의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와 미래형 원자력 시스템의 핵확산 저항성 요건 수립에 기여했다.
지난해는 연구용 원자로 수출을 위해 국내 관련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덜란드 팔라스(PALLAS) 대형 연구로 입찰에 참가, 3배수 입찰 대상자에 선정된 데 이어 요르단 연구로(JRTR) 건설사업을 수주, 원자력 연구개발 50년 만에 첫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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