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년 전만 하더라도 전시장 한쪽 귀퉁이를 전전하던 우리 기업들이 출입구 정면과 3D 이슈를 장악하고 전체 행사의 주인공처럼 활약했습니다. 정말 우리 전자산업의 대도약을 실감했습니다.”
최평락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은 올해 첫 공식 일정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쇼 ‘CES 2010’에서 시작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최 원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방망이질하는 느낌을 여러 번 맛봤다. 꼭 애국심이나 자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전자·IT 분야 핵심기술 개발 기관장으로서 CES 주역이 된 우리 기업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책임감이 눈에 비친 광경보다 더 묵직했다.
최 원장은 CES 참관을 계기로 올해 세계 IT 진화 방향을 △3DTV 원년 △그린 IT(에너지 절감) △자동차 IT(In-Vehicle) △융·복합 제품의 대중화 △홈네트워킹의 급진전 5대 테마로 정하고 개별 관련 센터에 기술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그에 걸맞은 기술 로드맵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각 분야에서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우리 산업 전체의 대응력을 높인다는 것이 연초 CES 출장에서 얻은 결론인 셈이다.
최 원장은 “특히 3D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2D에 갇혀 있던 물리·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음으로써 전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장 혁명을 일으키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장으로서 그의 주요 사업계획과 목표점은 벌써 내년을 향해 있다. 내년 8월 27일이면 전자부품연구원이 창립한 지 꼭 20주년을 맞는다. 취임 때 이미 최 원장은 “임기 중에 기관 창립 20주년을 맞는 것은 더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전 직원 앞에서 밝힌 바 있다.
KETI는 내년 창립 20주년 ‘성년’을 맞아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 및 IT 전문 기술·사업화 기관(R&BD 허브)으로 비상을 선포하고 올해 그 도약대를 만드는 일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최평락 원장은 올해 정부 출연연의 거버넌스 개편과 맞물려 민간 연구기관의 정부 지원 및 연구환경이 많은 도전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여러 도전을 △핵심역량 강화 △새로운 영역 개척 △중소기업 기술 지원의 효율성 제고 △전략 분야 집중으로 뚫겠다는 계획이다. 어떤 도전이 있더라도 내년 훌륭한 성년식을 치르기 위한 전진은 하루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최 원장은 “갖가지 도전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고, 보다 앞선 기술과 신뢰로 기업들의 기술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미국 출장 때 실리콘밸리, 텍사스주에서 세계적 연구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도 펼치셨다는데.
▲지난해 취임 때 이미 밝혔듯 기존 연구원들에게 자극이 되고, 세계적 선도기술에 조기 도달하기 위해 세계 수준의 석학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실리콘밸리의 한인 과학기술자, 유학생들을 두루 만나 우리가 보유한 기술의 세계 시장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고, 향후 전략적인 공동 개발을 통한 기술 진전 방안도 협의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주변 유수 대학교에 유학 중인 유학생들을 만나 전자부품연구원의 취업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몇몇 스타급 연구원들로부터 전자부품연구원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상담도 요청받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세계로 나아가 세계와 경쟁하는 KETI를 만들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연초에 새롭게 새겼던 각오가 있다면.
▲백호의 기상으로 성년 KETI를 ‘세계적 전자·IT 연구 허브(World Top Class Electronics R&BD Hub)’로 일으켜 세우기 위한 토대를 닦는 데 신명을 바칠 각오입니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虎視)으로 대내외 환경 변화를 주시하고, 창의적 목표를 명확히 함으로써 혁신적, 집중적 연구를 이끌어내겠습니다. 지금 당장의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아 연구원이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자세로 활동하겠습니다.
―올해 KETI의 사명을 압축하자면 어떤 것입니까.
▲기본적으로 KETI의 설립목적은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기술 개발과 중소·벤처기업 지원, 사업화 촉진 및 전문인력 양성입니다. 이 기본 목적을 단 한시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선 전자·정보통신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경쟁력으로 신기술·신산업을 창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지원 서비스와 사업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올해 특히 일자리 창출 정책에 부응해 IT분야 고용 확대 사업도 중점 추진하겠습니다. 청년 IT 연수, 취업 알선, IT분야 전문가 고용알선센터 설치·운영과 함께 전자전문 연수원 설립, 사이버대학 등 교육사업 참여, 일자리 창출에 진력하고자 합니다. 또 하나 올해는 융합·그린 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새로운 전략 시장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대외적으로 불확실한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와 수입구조 다변화를 통한 지속 성장을 추구하겠습니다.
―올해 KETI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기술이나 산업분야가 있다면.
▲KETI는 올해 실감IT, 그린·융합산업, 플렉시블 일렉트로닉스, 스마트IT 등의 차세대 유망기술 개발 및 보급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실감IT 분야에는 △3D 영상 및 코덱 △3D 실감 유저인터페이스 △3D 입체 음향 3개 분야가 포함됩니다. 그린에너지 분야에서는 △LED 조명 △전기차용 급속 충전, 모터기술 △2차전지 △유비쿼터스 에너지 전송기술 등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융합 분야는 기간·전통산업과 IT 융합을 기본으로 하면서 새롭게 u헬스케어, RFID/USN 분야 세계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방침입니다. 또 플렉시블 일렉트로닉스 분야에서는 △e페이퍼 △플렉시블 부품 기술을 세계 선도 분야로 집중 개발할 예정입니다. 또 MEMS, 압력, 가속도, 촉각센서 및 로봇, 지능형 자동차를 위한 최첨단 나노·마이크로 센서 등 기술을 스마트IT 분야로 개발하고, 금속·화학·세라믹 분야의 소재 기술이 접목된 융합소재 분야를 집중적으로 발굴, 개발하는 전자소재 분야에도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녹색·융합기술 개발을 위한 올해 로드맵은.
▲올해도 ‘그린과 융합’의 키워드가 IT 분야 핵심에 자리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KETI는 그린융합 분야 신산업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상용 기반의 전략 품목 개발과 원천형 R&D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그린 분야에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 및 범용 부품의 저전력화, 전력 고소모 모터의 고효율화, 전력반도체의 변환효율 향상, 유해물질이 없는 안전한 2차전지 등의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습니다. 융합 부문은 기존의 융합신산업본부, 메카트로닉스본부를 중심으로 메디컬IT 분야에서는 알레르기 검출을 위한 혈액검사용 나노반도체칩 등의 질병별 특화센서를 개발하고, RFID/USN 분야는 지능형 교통망, 사회안전망 시스템 등을 중점 개발해낼 예정입니다. 또 로봇 분야는 미래 휴머노이드 기반 기술인 로봇관절 기술을 역점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KETI 2010년 5대 중점 경영 방향
전자부품연구원은 올해 ‘융합·그린 산업 발전 주도 및 새로운 전략 시장 확보’라는 연간 목표 달성을 위해 세부 5대 경영·운영 방향을 잡았다.
5대 중점 경영 방향은 △경영환경 및 재무구조 개선 △전략사업 확대 및 사업구조 개선 △중소·벤처기업 지원 강화 △국제기술 협력 확대 및 연구역량 강화 △지속성장 가능한 조직 문화 정착이다.
경영환경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전문생산기술연구소 제도 개선 및 법적 위상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첫 번째로 올렸다. 구조적·법적 기관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새롭게 뛸 수 있는 환경과 사업구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또 정부 지원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핵심·원천기술 개발 과제 대응이 환경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전략 기술 개발을 위한 중장기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데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조직의 지속 성장을 위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만들고, 산업동향 분석 및 예측·기획 능력을 높이면서 수익 사업 다변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예산으로 다 풀리지 않는 과제는 ‘정공법’으로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바로 전략사업 확대다. IT, 자동차 등 주력사업의 글로벌 우위는 유지하면서 소재산업육성전략(WPM 프로젝트), 4대 강 스마트리버 사업 등 8대 중점영역으로 전략 사업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융합부품, 그린IT 등 대형사업 기획을 강화하고 신기술·신시장 개척사업도 적극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중소·벤처기업 지원은 곧 KETI 존립 이유라는 측면에서 총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대기업 협력 중소·벤처기업 모임, IT 중소벤처기업 협·단체 등 유관기관과 공동 협력을 강화하고, 맞춤형 패키지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토털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제기술 협력 확대 및 연구 역량 강화도 적극 추진된다. 바이엘 등의 글로벌 기업 및 프라운호퍼, IMEC, 조지아테크 등 세계 일류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해외 한인 과학기술자들과 우수 인력 풀을 구축해 운영하기로 했다. 기술 선점 및 수입구조 다변화를 위해 국제특허 및 표준화 활동도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최 원장은 “상생의 노사문화와, 바람직한 조직문화 정착을 통해 지속 성장 가능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도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진행할 아주 핵심적 과제”라고 말했다.
◆최 원장이 말하는 ‘특허표준의 중요성’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경쟁국에 앞서 특허·표준화하는 일이 개발 그 자체보다 몇십 배, 몇백 배는 중요합니다.”
최평락 원장은 올해 전자·IT 관련 우리 기술의 특허 표준화에서 분명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국내에서는 기술 사업화가 첫 번째 목표고, 해외에서는 특허·표준화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최 원장은 KETI 내에 특허표준실을 신설했다. 여기에 변리사도 영입하고 특허정보원 인력 등을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앞으로 특허청, 기술표준원, 표준협회 등과 전략적으로 협력해 자체 기술 개발한 결과물들의 특허·표준화는 물론이고 협력업체들에 특허·표준 관련 자문서비스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산업계에 향후 특허표준만큼 현실적이고, 절실하게 와닿는 수익원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며 “우리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지배력을 높이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 바로 특허·표준”이라고 강조했다.
KETI는 올해 신사업부문으로 적극 개척할 ‘스마트 하이웨이’ ‘스마트 리버’, 항공우주 관련 공동기술개발, 조선 융합 기술개발 프로젝트 등에 대해서는 기술개발 완료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특허·표준문제에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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