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올해는 쏴야(투자해야) 한다.’
새해를 맞는 벤처캐피털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해 한국 벤처캐피털시장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금융위기 상황 속 자본이 위험자산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외형적으로는 한국 벤처펀드 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미국 벤처펀드 결성규모는 84억달러로 전년도 전체(286억달러)의 3분의 1도 안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11월말 기준 1조842억원의 펀드가 결성돼 전년도의 1조925억원을 육박했다. 지난해 전체로는 2001년 이후 최대규모가 확실시된다.
이는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선 결과로 민간에서는 펀드 결성에 나서지 않았지만 정부가 모태펀드·신성장동력펀드 등을 통해 펀드 결성을 독려했고, 그 결과 민간도 여윳돈을 벤처펀드에 출자했다.
문제는 벤처캐피털업계의 투자다. 펀드는 결성했지만 마땅히 투자처가 없었다. 경기도 안 좋았고 여기에 회수시장인 주식시장이 나빠지면서 투자는 크게 경색됐다. 이 때문에 2008년과 지난해(11월 기준) 벤처펀드 결성규모가 1조원을 넘었지만 투자규모는 7247억원과 6977억원에 불과하다. 주가가 좋던 2007년 9593억원 펀드 결성에 9917억원 투자가 이뤄진 것과는 크게 다르다. 숫자로만 봤을 때 2008·2009년 결성된 펀드 가운데 약 6000억원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더 이상 투자를 미룰 수는 없다. 벤처펀드는 존속기간 5년 또는 7년이 대부분이다. 회수를 고려한다면 2∼3년내에 상당분을 투자해야 한다. 펀드 결성시 투자 의무약정을 한다. 의무약정기일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투자에 적극 나서려는 것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투자할 준비는 다 돼 있다. 상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투자는 바로 이뤄질 것”이라고 최근 업계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 새로운 투자처가 떠오르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는 주요 투자처로 ‘녹색(그린)’ 등 신성장동력 분야를 꼽았다. 정부가 강력한 정책적 지원 추진의사를 명확히 하자,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상복 스틱인베스트먼트 전무는 “올해 녹색분야로 여러 회사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지속적인 벤처투자동향 모니터링과 벤처캐피털업계가 투자처를 다양화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지원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2의 벤처 붐이 청년창업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이들 기업에게 자금이 투여될 수 있도록 관심이 절실하다.
최수규 중기청 창업벤처국장은 “지난해 어려운 상황에서 모태펀드가 벤처펀드 결성에 큰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는 이 자금이 창업기업과 신성장동력분야에 지원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투자 선순환을 위한 지속적인 제도 개선도 뒷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투자의무비율 및 해외투자 비율 규제 완화, 유한회사형(LLC) 창투사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도용환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코스닥 시장 안정에 따른 투자금 회수와 재투자 등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정부의 벤처 지원 의지가 지속된다면 신규 벤처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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