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지구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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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1938년 10월 30일 저녁 미국 CBS라디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지는 현장보도는 화성인 군대가 뉴저지의 한 농장에 착륙하고 주요 시설을 파괴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화성인의 침공소식은 오손 웰스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의 일부였지만 수많은 청취자들은 황당한 뉴스를 사실로 믿고 공포에 떨었다.

 인간의 본성에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이 넓은 우주공간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공간 저 너머에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이 존재한다면 언제라도 지구를 침략할지 모른다.

 외계인의 지구침공은 가장 인기있는 SF스토리로 영화, 소설로 수없이 복제됐다. 미국정부가 1950년대부터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국가혼란을 우려해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X파일류의 음모론은 21세기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끌고 있다.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다룬 SF영화 ‘콘택트’에서 주인공 엘리는 “이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라면서 “인간 말고 아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은 독선이자 오만”이라고 주장했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프랭크 드레이크는 외계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찾아내는 수학 방정식을 통해 우주공간 어딘가에 고등생물체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외계인의 존재가능성을 계산할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 지구와 같은 기후조건을 지닌 특수한 행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결과 극히 열악한 우주공간에서 생존이 가능한 미생물체는 외계생명체의 존재가능성에서 아예 제외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여기서도 인간은 인간과 닮지 않은 외계인의 존재를 좀처럼 이해하기도 인정하기도 싫어한다는 한계가 드러난다. 비록 달 착륙 성공으로 달나라에 토끼가 산다는 꿈은 깨졌지만 잇따른 외계탐사로 광대한 우주공간 어느 곳인가에 존재하는 미세한 생명의 흔적을 찾아낼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외계인의 범위에 박테리아와 같은 원시생물까지 포함하면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태양계 안에서도 ET를 발견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모든 우주탐사의 가장 야심적인 목표는 외계생명체의 발견이다. 지구 외에도 우주 곳곳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두려운 사실이 머지않아 밝혀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기존의 세계관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 인류가 창조한 종교, 문화, 철학 체계는 새로운 해석이 불가피해진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천동설→지동설) “인간도 하등동물에서 진화된 존재일 뿐이다.”(창조론→진화론) 지난주 발표된 한 외신보도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또 한번 뒤집힐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생명의 기원은 먼 우주에서 날아왔다. 지구는 거대한 우주생명계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최근 NASA에 따르면 1984년 남극에서 발견된 1.8㎏짜리 운석 ‘AHL84001’에서 고대 화성의 박테리아의 화석이 확인됐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돼 과학자들을 흥분시켰다. NASA 존슨 스페이스 센터의 연구진은 고해상도 전자 현미경을 이용해 화성의 운석을 관찰한 결과 특이한 크리스털 결정체 자철광 물질을 발견했으며 박테리아의 흔적이 맞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원래 이 운석은 10여년 전에도 화성 생명체 논란과 우주 생명 기원설의 시발이 됐었다. 남극 앨런 힐스에서 발견돼 ‘AHL84001’로 명명된 이 운석은 지난 1993년 화성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6년 바이킹 호가 화성에 착륙해 토양표본을 채취, 성분을 분석한 데이터와 AHL84001 운석의 조성비율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NASA는 이 운석이 지금부터 1600만년 전 소행성이 화성에 충돌하면서 떨어져 나와 태양계를 방황하다 1만3000년 전 지구의 인력에 끌려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그동안 지구상에서 발견된 화성운석은 총 12개며 앨런 힐스 운석(ALH84001)도 그 중 하나다.

 NASA는 1996년에도 이 운석에서 약 30억년 전 지구의 박테리아와 유사한 모양의 군체가 발견됐고, 유기분자인 PAHs가 존재한다며 ‘화성 생명체 이론’을 발표해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당시 NASA는 PAHs가 박테리아처럼 매우 간단한 유기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분해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며 전자현미경으로 검사한 결과 35억년 전 지구 박테리아와 유사한 모습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따라서 앨런 힐스 운석은 오래 전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천문 우주 연구가들은 당시 NASA가 내놓은 근거를 화성 생명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도 핵산과 단백질을 갖춘 어엿한 단세포 생물이기에 최소한 세포기관의 흔적이라도 발견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NASA는 막대한 우주개발투자를 합리화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설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13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NASA는 앨런 힐스 운석에 새로운 증거를 보탰다. 훨씬 발전된 초고밀도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운석을 관찰한 결과 박테리아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데이비드 매케이 선임연구원은 “운석체 크리스털 결정체 구조의 25%가량이 박테리아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과 화학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증거를 발견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회의론자들은 이 같은 연구 결과에 아직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어떻다고.” “외계 생명체가 수십억년 전 화성에 존재했다고 해서 지금 우리에게 달라질 것이 있는가.” “오손 웰스가 묘사한 우주전쟁이 재현되지 않는 다음에야 무슨 상관이 있나.”

 화성생명에 대한 가설은 아직 수많은 논란과 연구가 필요하다. NASA가 수년 내 새로운 화성탐사선을 보내고 화성 토양에서 직접 미생물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모든 논란은 종결된다. 그리고 인류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이후 가장 급격한 우주관의 변화를 체험할 것이다.

 우주 생명체가 있다는 인식은 바로 인류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는 것과 직결된다. 생명체의 다양하고 독특한 생존 방식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의 한계와 편견을 넘어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이다. 지구생명의 기원은 먼 우주 공간에서 날아왔다. 차디찬 우주 공간 곳곳에는 생명체들이 번식하고 있다. 인류는 거대한 우주생명계의 작은 가지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인간이 가졌던 협소한 인식의 벽을 깨고 그야말로 조화로운 광대한 코스모스의 경이로운 세계에서 인류의 존재를 바라볼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서양에선 르네상스 이전까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고 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종교와 권력으로 탄압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지지했다가 교황청에 의해 화형을 당할 뻔했다. 천동설에서 벗어난 후에도 인간들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지성체며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우월감과 독선에서 빠져 자연환경을 착취해왔다. 우리가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GNP 성장률이나 실용적인 기술제품이 나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우주 생명계의 한 일부로서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종교, 철학, 정치제도에서 관용도와 개방성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확대되는 것이다.

 화성침공은 기괴한 모습의 화성인들이 광선무기로 도시를 쓸어버리는 SF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돌멩이 속에서 외계 박테리아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그날, 인류문명에 대한 화성침공은 시작될 것이다.

배일한·최순욱 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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