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책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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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르르 검지 손가락 끝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댄 브라운의 화제의 신간 ‘잃어버린 상징(The Lost Symbol)’ 첫 장을 넘겼다.

 침을 묻혀 넘기던 종이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주인공 댄 브라운이 쫓고 있는 프리메이슨(중세 비밀 결사대)의 각 주를 클릭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중세시대 소작농들의 사진이 팝업 형태로 뜬다. 인상적인 내용은 밑줄을 주욱 긋고 메모를 해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만 따로 검색해 필요한 내용을 찾기 위해서다.

 전자책(e북)은 이미 이 모든 기능을 구현했다.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고 터치펜으로 읽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듣는 디지털 책의 시대가 열렸다.

 ◇21세기형 인쇄술 ‘e북’=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책이라는 정의를 바꿔 놓았다.

 책의 사전적 의미는 ‘묶음’이다. 일정한 목적에 맞춰 사상·감정·지식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적거나 인쇄해 묶어놓은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야생나무 껍질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를 새겨 넣어 묶은 것이 시초다.

 전자책(e북)은 인쇄제본책과 달리 종이가 필요 없다. 디지털이기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전자 디스플레이에 기가급 메모리를 탑재한 리더는 수천권 분량의 디지털 책을 담을 수 있다. 활자는 눈이 피로하지 않은 전자잉크를 써서 표현된다. 최신 책들은 인터넷 북스토어에서 시판가보다 훨씬 싼 편당 10달러 이하에 구매, PC로 내려받을 수 있다. 내려받은 책은 PC와 리더를 연결해 메모리로 전송, 저장한다. 외출 중에는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된다.

 e북은 현재 진화 중이다. 기술과 기능은 더 향상되고 기기는 더 다양해지는 추세다. 미국출판사연합회(AAP)는 e북의 편의성에 관련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고 밝혔다. e북 콘텐츠는 2003년 2000만달러에 머물던 것이 2007년에는 6700만달러로 증가했고, 2008년에는 1억1300만달러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했다. AAP는 단말기가 다양화되고 신문·잡지 등으로까지 e북 콘텐츠가 확대되면서 폭발적 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말기, 선택의 폭 넓어졌다=아마존이 지난 5월 출시한 ‘킨들 DX’는 랩톱 컴퓨터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다. 화면 크기 9.7인치, 해상도 1200×824 픽셀을 갖추고 있어 눈이 피로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3.3Gb급 메모리에는 3500권 분량의 책을 담을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3G 통신기능을 갖췄다는 점. PC와 연결하지 않고도 이동하면서 신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보스턴글로벌·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일간지의 전자신문도 구독할 수 있다.

 MP3플레이어로 유명한 국내 벤처기업 아이리버의 e북 단말기 ‘스토리’는 진일보한 기술력을 갖췄다. 6인치 크기의 화면에 피로감을 주지 않는 전자잉크, 2Gb급 내장 메모리 외에 최대 32Gb급의 외장 메모리를 지원해 많은 양의 문서를 저장할 수 있다. 한글과 파워포인트, PDF 등 다양한 파일 포맷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학교나 공공도서관 등의 방대한 자료를 십분 활용할 수 있다. MP3 재생 등 멀티미디어 기능은 팁이다.

 이달 들어 일본 소니는 ‘리더 데일리 에디션’을, 우리나라 네오럭스는 ‘누트(Nutt) 2’를 각각 선보였다. 모두 최신 책이나 신문을 손쉽게 사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무선인터넷 기능을 갖추고 인터페이스를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미래의 책, 진화는 계속된다=책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e북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읽기 쉽고 손쉽게 업그레이드하고 휴대하기 편리한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휘는(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전자종이(e페이퍼)’ ‘4G 네트워크’는 전자책과 디지털 신문의 발전 방향을 가늠케 하는 예고된 대표적 기술이다. 종이책이나 신문처럼 돌돌 말거나 접어 손에 들고 다니다가 지하철 가판대나 편의점에 설치된 e북 충전소를 만나면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그 자리에서 내려받으면 된다. 이동통신망으로 디지털 북이나 그날의 디지털 신문을 구매하는 것은 기본. 업로드 속도가 빨라진 4G 네트워크가 되면 전 세계에 e북 단말기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에게 내가 쓴 소설을 직접 전송, 판매하는 새로운 e북 유통체계도 마련될 것이다. 누구나 시민기자가 돼 각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면서 지구촌 독자와 말 그대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미국 최초의 도서관인 하버드대학 도서관장인 로버트 단턴은 “고인 지식은 썩는다”면서 대학 도서관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방대한 도서관의 장서를 개방했다. 그는 또 디지털 라이브러리 작업도 맨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모두 개방과 공유를 위해서다.

 인간은 사회적 기록(記錄)의 동물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 기록해왔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첫 모습이었다면 미래에도 디지털 기술과 연계된 또다른 형태의 기록 매체가 등장할 것이다.

◆책의 미래를 위헙하는 것들

 전자책(e북)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이라는 대전제는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낡은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하 서가를 만들었지만 단 한 번도 읽히지 않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물리적으로 찾기도 어렵고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해 둔 것은 별도의 인쇄 작업이 필요하다. 도서관을 ‘책들의 무덤’, 종이책들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e북이 단숨에 인쇄제본책들을 대체하고 주류 매체로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다.

 1. 단말기의 선택 폭을 넓혀라

 현재 전 세계에 판매된 e북 단말기는 160만∼170만대. 연말께 200만대가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대표적 제품은 아마존의 ‘킨들’. 2007년 처음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80만대가 판매돼 여전히 독보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킨들의 인기에 힘입어 소니·삼성전자·아수스·아이렉스·아이리버 등 국내외 전자업체 20여곳이 출사표를 던졌다. 애플이 아이폰에 e북 리더를 탑재하면서 노키아·모토로라 등 휴대폰 제조업체도 대응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2010년이면 e북을 읽을 수 있는 매체가 전용 단말기에서부터 스마트폰, 노트북PC와 넷북 등으로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2. 표준 포맷의 콘텐츠 확산

 킨들은 e북에 독자적인 표준을 적용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자책 국제 표준인 e펍(PUB)은 지원하지 않는다. 반면에 소니·아이리버 같은 후발주자는 표준 포맷에다 t×t·pdf·doc 등 여타의 문서 표준도 지원한다. 여러 가지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부각한다. 문제는 아마존이 킨들용으로 제작한 e북 콘텐츠와 반스앤드노블이 타 제조업체를 위해 만든 e북 콘텐츠가 호환이 안 된다는 점. 아마존과 반스앤드노블은 각각 30만권과 70만권의 e북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독자를 위해서는 두 진영이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대승적 협력이 필요하다.

 3. 무선 접속·멀티미디어 기능 도입

 현재 킨들은 전자잉크(e잉크)를 사용해 가독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읽기 편하고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면에 후발주자들은 음악과 동영상 재생, PC와 연동 등에 열을 올린다. 화면도 컬러 디스플레이로 바꿨다.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무선 접속은 이제 필수다. 3G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새 e북을 구매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신문도 볼 수 있다.

 4. 대중화할 수 있는 가격이 관건

 신형 킨들DX는 499달러, 킨들2는 299달러다. 비싸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소니는 최근 200달러대의 신제품 ‘포켓 에디션’을 내놓았다. 아수스도 일반 책 모양의 형태를 지닌 듀얼 디스플레이의 신제품을 163달러(약 20만원)라는 파격적 가격에 내놓기로 했다. 9.99달러로 고정화된 e북 콘텐츠 가격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더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리서치는 e북이 매력 있는 제품이 되려면 리더가 50달러대, 콘텐츠가 2.5달러대로 떨어져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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