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독 ‘가전제품’과 관련한 규제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기획재정부는 에어컨·냉장고 등 대형 가전에 개별소비세 5%를 추가로 물도록 세제 개편안을 확정한 데 이어 지식경제부는 ‘에너지 효율 등급 제도’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가전 제품에 에너지 과소비를 이유로 소비세를 부과한 상황에서 에너지 효율 등급까지 강화하면서 이중 규제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특히 에너지 효율 등급 제도는 이제 막 불붙은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뿐만 아니라 자칫 국내 산업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사실상 준비 기간 없이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효율 등급 기준이 에너지 효율 정책이라는 취지와 무관하게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업계는 대표적인 탁상 전시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산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에너지 효율 등급 개정(안)이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앞서 가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 제도는 글로벌 기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으며 수출 제품에 비해 내수용에 더 많은 고효율 기술을 적용했다. 현행 제도에서 국내 1등급인 제품은 EU 기준으로 평가할 때 A+ 이상 등급에 해당한다.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국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높은 등급 기준을 적용해 시행하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결국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내수 시장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촉박한 준비 기간도 문제다. 한마디로 에너지 효율화라는 장기 목표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정부는 효율 등급 개정안과 관련해 다음 달까지 공청회를 거쳐 연내에 확정하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 시행할 계획이다. 예정대로라면 제도 시행까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가전 제품은 협력업체의 부품 소싱과 기술 개발, 설계 변경, 생산 계획 등을 고려할 때 최소 2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다.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 가장 앞섰다는 유럽도 에너지 소비 규제안과 관련해 2005년 지침을 발효하고 사전 연구 1년 6개월, 공청회 격인 ‘컨설테이션 포럼’ 6개월 등 2년 동안 이해 관계자 의견을 수렴했다. 그 과정에서 업계의 참여를 유도했다. 국내의 대기전력 관련 규제안과도 사뭇 대조된다. ‘2010년 대기전력 1W’ 가이드라인을 2005년에 발의해 산업계가 대비하도록 한 선례가 있다. 이번 에너지효율등급 개정안은 지나치게 준비 기간이 짧다.
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포함해 이미 앞서 발표한 김치냉장고 시험방법 개정, 개별소비세 도입, 톱러너프로그램(Top Runner Programme,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에너지효율목표관리제) 도입 등 다양한 에너지 효율 관리제도를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추진해 혼란스러우며, 중복 규제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측은 “자동차는 취득세·등록세를 감면해 주는 등 규제 완화가 정책 기조인 상황에서 전자산업만 유독 규제 일변도로 간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면서 내수 시장도 활성화할 수 있는 더욱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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