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늦게 진행되길 바랄 뿐입니다.”
2012년까지 IT 시스템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 한 공공기관 최고정보책임자(CIO)는 다소 퉁명스러웠다. 그리고 그 전에 서울 지역 지점장으로 보직 변경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췄다. 고생문으로 들어설 게 불 보듯 환한데 IT센터를 이전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공공기관 CIO도 유사한 태도였다. 순환보직이므로 2012년 수행될 센터 이전을 현재 자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관의 의지가 아니라 정부 방침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IT 센터를 이전하는 것이기에 이전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데 거부감은 있을 수 있다. 또 업무 터전이 갑자기 생활 터전을 벗어나는 데서 불평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CIO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다른 산업도 아닌 ’공공’ 부문 아닌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지방 이전을 준비해야 할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IT 센터 이전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IT 센터 이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를 새로 설치 혹은 이전 설치하고 시스템 전원을 껐다 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서비스 중단과 데이터 손실 없이 애플리케이션과 시스템들을 어떻게 이전할 것인지, 서비스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어떤 전문 업체를 선택해 어느 정도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것인지, 센터 이전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이 반드시 함께 고민돼야 한다.
뿐만 아니다. IT 센터 이전을 하는 만큼 노후화된 장비의 교체도 검토할 수 있고 새 센터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나 가상화 등 현재 대세로 자리잡아가는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검토해볼만하다. 또 에너지 효율성을 어떻게 높이며 탄소 발생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그린 IT 환경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체크 리스트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런 체크리스트는 먼 나라 일이 되고 있다.
IT센터 이전 준비가 복잡하거나 까다로워서 엄두를 못내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럽다. 문제는 자신이 담당해야 할 일이 아니라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시기상으로 아직 이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IT 프로젝트은 대부분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행해야 하는 사안들이 많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향후 추진할 계획인 프로젝트가 IT 센터 이전 이슈와 결부되지 않을 리 없다.
지금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이전에 임박해 준비하게 되고 그 공은 새로운 CIO에게 넘어갈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고 촉박한 준비 기간으로 실무자들이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함은 물론 센터 이전에 따른 리스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결정난 상황이라면 제대로 이전하기 위한 계획과 실행안을 수립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CIO들이 실무자들까지 동원해 자신이 속한 기관의 IT부서만큼은 어떻게든 서울에 남아 있도록 하자고 의견몰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것이 향후 기관의 서비스 지원과 정보화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공공 CIO들이 지방 이전을 앞두고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지방 이전을 계기로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최신 기술을 도입해 기존의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자 하는 CIO들도 많다. 이들의 열정이 일부 개인의 이익을 중요시 하는 CIO로 인해 무모한 행동으로 비춰질까봐 걱정스럽다.
IT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IT 센터 이전에 따른 인력 유출이 없도록 하는 것도 CIO의 몫이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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