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앞다퉈 벤처펀드를 결성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중소·벤처 분야 예산이 크게 확대되자 정부·기관이 ‘신성장동력’이라는 명패를 달고 펀드 결성에 잇따라 나선 결과다. 40여개의 펀드가 등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벤처캐피털 업계는 자금 회수 걱정이 커졌다.
3일 관련 정부·기관·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결성된 벤처펀드 규모가 5596억원에 이르는 가운데 8월 이후 정부·기관이 결성하는 펀드가 8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수년간 벤처펀드 결성 규모가 모두 합쳐 1조원 정도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하반기 펀드 결성 주도세력은 단연 정부다. 올해 처음 신성장동력펀드를 기획한 지식경제부가 7월까지 1200억원을 결성한 가운데 하반기에도 3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출범한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청도 현재 4789억원의 벤처펀드를 만들었고 하반기에도 2750억원 안팎의 추가 펀드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200억원 규모의 농업전문펀드를 연내 결성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지자체로는 경기도가 250억원 규모의 경기녹색성장펀드를 이르면 이달 출범하고, 국민연금공단과 기업은행이 각각 1900억원과 1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 중이다.
정부·기관이 이처럼 일시에 펀드 결성에 나선 데는 관련 예산을 대거 확보한 가운데 민간(벤처캐피털 업체)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민간과 매칭으로 펀드를 결성함으로써 규모를 늘릴 수 있어, 정책 홍보 효과도 크게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펀드 결성이 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데 펀드가 늘어날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금회수 시장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올해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500∼600개사가량에 투자하는데 코스닥 상장 회사는 50∼70개사에 불과하다”며 “펀드만 만들면 좋은 것이 아니라 회수시장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벤처캐피털 업체 대표는 “지경부, 국민연금, 모태펀드에서 한꺼번에 40개가량의 펀드 결성을 추진해 시장이 너무 뜨거워졌다”며 “펀드끼리 투자 경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벤처펀드 시장 과열’을 이유로 당초 계획과 달리 벤처펀드를 결성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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