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 반도체·휴대폰용 기판을 중심으로 전 세계 인쇄회로기판(PCB)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줄줄이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경기 불황의 여파로 소니·샤프·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내 대형 수요 기업이 직격탄을 맞은데다 엔화강세 현상까지 겹쳐 한국·대만의 PCB 업체들과 시장 경쟁이 격화한 탓이다.
이에 따라 삼성·LG·하이닉스 등 전 세계 IT시장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수요 기업들을 보유한 국내 PCB 업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20일 외신 및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회장 박완혁)에 따르면 이비덴·NOK·CMK·신코 등 내로라하는 일본의 주요 PCB 업체가 지난 회계연도에 전년 대비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시장 1위인 이비덴은 지난 2007년 회계연도에서 2045억엔의 매출을 달성했으나, 지난해 무려 20% 이상 감소한 1629억엔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NOK는 1698억엔의 매출액으로 전년 대비 8.5% 정도 줄어들어 매출액 기준으로 이비덴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CMK는 지난 2007년 회계연도 기준 1835억엔이던 매출액이 무려 41%나 급감한 1076억엔으로, 간신히 1000억엔대 고지를 지켰다.
이 밖에 일본 내 10위권 PCB 업체 가운데 스미토모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기업들도 모조리 매출액이 뒷걸음질쳤다.
문제는 일본 PCB 업계의 마이너스 성장세가 올해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협회 조사 결과 올해 이비덴이 지난해보다 14% 가까이 감소한 1401억엔 수준에 그치는 것을 비롯, 신코·NGK 등 10위권 내 주요 PCB 업체도 많게는 두 자릿수대의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세계 유수의 일본 PCB 업체들이 하락세로 접어든 것은 앞선 기술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반도체·휴대폰·가전 수요 업체들의 실적 악화가 타격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엔화강세 현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가운데 최근 한국·대만 PCB 업체들이 반도체·휴대폰용 고부가 기판 분야에서 기술력을 높이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그동안 고부가 기판 시장에서 일본의 ‘추격자’ 정도에 머물렀던 국내 PCB 업계는 올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기회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LG전자·LG디스플레이·하이닉스반도체 등이 전 세계 반도체·휴대폰·LCD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계기로 글로벌 경쟁력 확대의 호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병남 전자회로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국내 PCB 업계가 삼성·LG 등 내수 시장 점유율을 우선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다만 여기서 그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수출 시장을 본격 확대하는 발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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