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클로즈업] tvn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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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재벌집 도령이 있다. 당연 그를 돌봐주는 평범한 가정의 여자도 있다. 처음에 그가 재벌집 도령임을 몰랐던 바로 그 여자. 우연한 기회에 바보 같은 그 남자가 돈 많은, 그것도 어마어마한 재벌 출신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은 뻔하다. 사귀고 또 싸우고.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일반적 드라마라면 극의 무게중심은 ‘기억상실’보단 ‘재벌임이 밝혀지는 시점’에 맞춰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tvN(대표 송창의)의 신상 코미디 ‘롤러코스터(롤코)’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한창 재미있게 진행되다 캐릭터가 완성되는 지점에서 성급히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곤 자막이 흘러나왔다. ‘저희는 결코 전파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차별화할 수 없을 바엔 여기서 극을 중단하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억지웃음이 아닌 생활 속 재미=KBS ‘개그콘서트’와 같은 스탠딩 코미디가 대세인 한국 개그계에 괴물이 등장했다. 나도 코미디 하면 할 말 많은 사람이지만 롤코와 같은 놈은 처음 봤다. 롤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던 지난달 송창의 대표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대차게 물었다. 정말 재미있냐고 말이다. 그러자 송 대표는 “만약 지상파에서 이런 코미디를 했다면 개콘이 아닌 그 프로가 대세가 됐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송 대표 말을 다 믿진 않았다. 우리는 프로니까. 그러나 7월 18일 첫 방송을 보곤 아마추어임을 자인해야 했다. 그래 내가 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롤코는 근래 10년간 내가 본 한국 코미디 중 최고였다.

 롤코도 형식은 일반 코미디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정형돈, 이혁재, 김성주, 정가은, 서영 등 출연 배우가 10여 개의 에피소드를 60분간 이어간다. 그러나 이런 포장과 달리 내용은 정말 물건이다. 생활 속 재미를 발견한다는 모토에 걸맞게 모든 소재가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토했다는 내 친구의 이야기’처럼 흡입력이 대단하다. 게다가 롤코에선 개콘류의 사전에 입을 맞춘 만들어진 코미디에선 맛볼 수 없는 ‘조잡한 매력’까지 느낄 수 있다.

 롤코의 대표 코너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남녀 탐구 생활’을 들 수 있다. ‘남자, 여자를 모른다’ ‘여자, 남자를 모른다’는 설정으로 목욕탕, 화장실 등 같은 장소에서 벌이는 남녀 간 행동 차이를 그린 이 코너는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큰 웃음을 선사한다. 3회에선 공중 화장실을 다녀온 후 손을 안 씻는 남자와 변기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큰일(?)을 보는 여성을 소개해 그야말로 뒤집었다. 당시 출연 배우인 정가은이 취한 ‘정가은 기마자세’가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고속도로 올라탄 롤코, 하이 코미디를 득템하라=롤코가 방영되는 매주 토요일 11시는 원래 ‘막돼먹은 영애씨’가 지키던 곳이다. 영애씨가 케이블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듯 롤코도 그에 못지않게 순항 중이다. 5회까지 마친 지금, 초스피드와 반전을 키포인트로 빠르게 신규 시청자를 흡수하고 있다. 특히, 말장난 몸개그가 아닌 연기를 통한 풍자와 해학, 눈물이 교차하는 페이소스는 서영 등의 연기와 더불어 눈에 착착 감긴다. 3회 땐 막장 드라마를 패러디한 ‘막장 극장’ 코너를 내세워 케이블 업계에선 매우 높은 1.5%라는 대박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시작은 한 순배 돈 이제부터로 보인다. 캐릭터가 안착한 지금이 고비다. 사실, 지난주 남녀 탐구 생활은 조금 지루했다.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시원했지만 ‘애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라는 소재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롤코는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재미만큼 기대도 커지게 마련이다. 커진 기대를 충족시켜 줄 롤코를 바란다. 빨라진 속도만큼 매주 신상 코미디를 득템(아이템을 얻는다)하라. 지상파 방송이 부러운가?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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