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산업 위기감을 걷어내기 위해 사업자들이 제각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자율성을 확대하고 창의적인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면허(라이선스)를 받아야 하고 어느 정도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지위도 갖고 있는 통신산업에는 그만큼 ‘굴레’도 많이 있다. 통신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사업자들을 옭아매고 있는 수많은 굴레를 이른 시간 내에 벗겨내는 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의 첫걸음이다.
이런 활동에는 무엇보다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개선해 나가는 활동이 필수다. 이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 단말 보조금 규제를 폐지하고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 탑재 의무를 해제하는 등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규제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또 전기통신사업법, 전파법 등 규제완화를 위한 관련 법령 개정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통신산업은 여전히 여러 ‘시어머니’들이 넘보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각종 규제가 통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 네트워크 투자 확대나 새로운 기술 개발 등을 요구하면서도 명확한 근거 없이 통신요금 인하라는 부담을 지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일관된 기준 아래 산업을 규제하고 투자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선순환 환경을 조성해줄 때 비로소 통신산업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제도 개선 노력=방통위는 규제완화를 기조로 한 통신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업계에서 부담으로 여겨왔던 단말 보조금 규제나 위피 탑재 의무화 등을 폐지함으로써 이런 모습들을 보였다. 또 정보통신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결국 2013년에는 폐지하도록 해 사업자들의 어깨를 억누르고 있던 바위를 들어냈다.
아직 법 개정 작업이 남아 있지만 역무를 단일화하고 요금규제를 완화하는 한편(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무선국의 수조사를 표본조사로 줄이는(전파법) 등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업자들은 한결 기업활동에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방통위 소관이 아닌 법안이나 규제 정책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국립공원 내 통신시설 설치 규제가 완화돼(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완충지역으로 지정된 곳에는 기지국을 설치하게 됐다. 그동안 국립공원 일부 지역에서 휴대폰 통화가 안 돼 나타났던 안전에 대한 우려가 해소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의 전기요금이 산업용으로 지정돼 통신업계는 비용 부담을 확연히 줄일 수 있게 됐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활동도 주목된다. 권익위는 방통위와 협의를 거쳐 △1588·1566 등 전국 대표번호 번호이동 △아마추어무선기사 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4급 시험 신설 △인터넷전화와 080착신전화·전국대표번호 간 소통 등을 포함한 행정규칙 73건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모자란다=법·제도 및 행정규제는 건전한 산업발전과 시장균형 등을 위해 필요한 장치긴 하지만, 과도하고 불합리한 각종 규제는 통신산업 발전 및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등 통신사업자들의 경영환경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규제들이 사업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가장 먼저 통신산업을 ‘층층시하 시집살이’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통신산업은 과거부터 옛 정보통신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엇갈린 행정지도와 규제 가이드라인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해 초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며 논란이 된 800㎒ 로밍 문제를 놓고 방통위와 공정위가 엇갈린 주장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또다시 불거지고 있는 ‘통신비 인하’ 압박은 공정위, 국회를 비롯해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이제 사업자들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감사원마저도 감사보고서를 통해 통신시장의 과금체계 등을 지적한 바 있다.
같은 통신요금을 두고 한 기관은 그동안 많이 인하됐다는 해석을 내놓지만 다른 기관은 통신업체가 요금인하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몇 해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 때문에 벌어지는 가공통신선의 지중화 공사에 통신업계가 100%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 통신전주를 설치할 때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규제 등도 최근 사업자에게 큰 부담이다.
앞으로 신설 예정인 규제 역시 통신업계를 옭아매고 있다. 현재 발의된 통신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는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정보통신공사 기술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통신사업자의 자체공사감리를 금지하는 조항이 삽입돼 사업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올해 말까지 진행될 주파수 할당 시 대가가 과도하게 책정된다면 통신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은 다음 달 주파수 할당 공고를 앞두고 할당 대가 수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인구 대비 이동통신 가입자 비율이 96%로, 포화될 대로 된 시장에서 지나친 할당 대가가 부과되면 사업자들은 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제는 보다 큰 틀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중복 규제와 과도한 규제의 환경에서는 통신산업이 투자를 확대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다음 세대로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기 어렵다. 경쟁력을 갖춰 해외로 뻗어간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규제 기관의 역할과 철학이 달라져야 할 시점이다. 투자를 압박하고 강요하기보다는 ‘투자를 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투자와 성장이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규제 기관의 역할이다.
사업자가 글로벌 트렌드와 시장 상황을 고려해 투자하고 이를 통해 이용자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통신 규제기관을 이끌었던 한 인사는 “정부가 투자를 독려하려면 먼저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요금을 내리라고 사업자들을 압박하면서 사업성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투자하라는 요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업자들이 적절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규제기관의 역할”이라고 못 박았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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