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경제 교류 협력 시대를 개막한 주역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000년 6월 13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 정상은 전쟁재발 방지와 평화정착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을 천명했으며 반세기에 걸친 반목과 대결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시대를 여는 초석을 마련했다.
국민의 정부 당시 남북은 9차례 장관급 회담을 포함해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서 80차례에 가까운 공식 회담을 가지면서 분단 반세기의 벽 허물기에 나섰다. 남북경협추진위원회(3회), 철도 및 도로 실무 협의회 접촉(4회), 남북경협 실무 접촉(2회) 등 상당수 남북 접촉이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
국민의 정부 초기만 해도 3억달러 정도였던 남북 교역량은 연간 5억달러 이상 규모로 성장하고 교역품목도 600여종으로 증가했다. 위탁 가공 교역도 단순 가공품목에서 컬러TV, 전자 제품 등으로 다양화됐다. 민간 협력 사업도 관광, 농업개발, 자동차, IT분야로 확대됐다.
특히 DJ 정부 초기 꿈틀대던 남북 간 IT 교류협력은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민간차원에서 ‘분단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합의로 이어지며 지난 수십년 동안의 성과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급팽창했다.
삼성전자는 2000년 3월부터 북한 조선콤퓨터센터와 함께 베이징에 개발센터를 두고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사업에 착수했으며, 하나로통신은 북한 삼천리총회사와 통신부품 조립 외에 3차원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를 합작 제작했다.
2001년 8월에는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한(하나비즈)과 북한(평양정보센터)이 공동으로 투자한 남북 합작 IT개발·교육회사 ‘하나프로그람센터’가 중국 단둥에서 극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김책공대, 김일성대학 등을 졸업한 북한의 우수 인력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의뢰를 받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남북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아이엠알아이, 훈넷 등과 같은 중소기업들의 협력 사례도 이어졌다.
대학·연구기관에서는 2001년 5월 포스텍이 평양정보센터와 가상현실을 포함한 IT 공동연구개발 협정을 맺었으며 2002년 7월에는 한양대 공대 교수 두 명이 두 달 동안 김책공대의 강단에 서는 모습이 연출됐다. 남한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북한 교육성은 지난해 6월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첫 합작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착공식을 가졌다. 우리나라 자본이 투입된 평양과학기술대는 곧 완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에는 경제 공동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당국 간 협력 사업에 집중했다. 2003년 초를 목표로 남북 간 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을 추진했으며 이에 앞서 2002년 말에는 경의선·동해선 임시도로를 개통했다. 특히 개성공단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현재와 같은 대규모 남북 경협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남북 경협은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져 더욱 확대됐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남북경협은 퍼주기 논란을 빚기도 했으며 MB정부 들어서는 금강산 피격사건, 핵실험, 로켓 발사 등의 사건이 발생되면서 남북 경협은 크게 위축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꿈이 담겨있지만 미완으로 끝난 남북협력시대. 이제는 후대의 몫으로 남았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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