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잠깐 가방에서 짐을 꺼내고 창밖을 보니 내 차가 스르르 움직인다. 가슴이 철렁했다. 0.1초 사이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브레이크를 안잡았나, 차가 고장났나, 벽에 부딪히려나, 빛의 속도로 생각이 이어지며 브레이크를 밟는다. 하지만 내 차는 물끄러미 시동이 꺼진 채 멎어 있다. 옆 차가 후진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내가 착각한 것이다. 옆 차의 후진이 내 차의 전진 같다.
나의 전진이 주위의 후진같이 느껴지고, 세상의 전진이 나의 후진처럼 느껴진다. 요즘처럼 세상이 빨리 돌아갈 때는 나는 점점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점점 밀리는 것 같다. 봐야 할 책도 많고 영화도 많고, 익혀야 할 휴대폰 새 기능도 늘고 컴퓨터는 더욱 첩첩산중이다. 마음이 바빠지고 머리가 조급해진다. 이럴 때 너무 창밖만 주시하면 어지럽고, 너무 내 안에만 갇혀도 세상의 속도를 놓친다. 기차를 타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으면 빠른 줄 모르고, 너무 내다보고만 있어도 속도를 체감하지 못한다. 밖이 움직이는데 내가 움직이는 것 같다.
지식을 넓히는 공부도 필요하지만 생각을 키우는 고민도 연습해야 한다. 정보가 많아지고 시간이 모자랄 때는 점점 더 단순해지고 겉만 훑고 다닌다. ‘ctrl C’와 ‘ctrl V’로 세상을 살면서 그것이 내가 아닌 지식과 속도로 착각한다. 세상에 범람하는 화려한 자료와 분량이 내 능력이 아니라 내가 고민하고 생각한 것이 나의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투를 따라할 수 있을지언정 그 마음 씀씀이와 그 맥락은 이해하지 못한다. 거품이 가라앉고 연기가 걷힌 다음에도 남는 것이 나다. 이제 깊이도 고려하자. 세상이 빠르게 돌아간다고 허겁지겁 뒤쫓아도 빈털터리가 되고 세상과 등돌려도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된다. 속도와 깊이를 동시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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