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무인자동차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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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자동차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운전자가 없는 차량이 장애물 코스를 주파하는 무인자동차대회가 내년 10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무인차 대회는 자동차 운전에서 인간의 역할이 점차 줄어드는 교통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이지만 안전운전을 돕는 무인주행기술 개발과 실용화에 매우 소극적인 편이다.

 한국산 자동차가 후발주자로 내세운 장점은 저렴한 가격대에 무난한 성능이었지 뛰어난 안전성이나 첨단기술은 아니었다. 요즘 신형 에쿠스, 제네시스와 같은 고급승용차에서 자랑하는 첨단 안전사양인 레이더 센서로 앞에 가는 차량과 적정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선에서 이탈하면 경보를 울리는 레인키핑 어시스트 등은 독일, 일본에서 이미 10여년 전 실용화된 기술이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외국에서 검증된 무인주행기술을 도입하는 데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충돌사고가 날 것 같으면 저절로 멈춰서거나 버튼 하나로 후진 일렬 주차를 대신 해주는 똑똑한 신차 중에 아직 국산 차량은 없다.

 그동안 일부 대학이 무인자동차 분야에서 상당한 연구성과를 거뒀지만 체계적 지원이 부족한데다 완성차 업계의 외면으로 무인주행기술 실용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자동차 개발자들은 선진국에 비해 도로환경이 혼잡하고 사고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섣불리 첨단 안전사양을 도입했다간 자동차 제조사의 리스크가 너무 커진다고 설명한다. 물론 고객 측에선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안전운전을 돕는 무인주행 분야에서 계속 뒤처지면 한국이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낙오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줄 반가운 소식이 최근 흘러나왔다.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 무인차 개발을 촉진하고자 세계 두 번째, 아시아 최초로 무인자동차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대학생 미래자동차 기술공모전을 내년 10월 확대 개편하면서 주요 대학팀들이 참여하는 ‘제1회 무인자율 주행자동차 연구경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미 지난 3월부터 고려대, 계명대, 국민대, 부산대, 서울대, 전남대, 포스텍의 7개 대학 자동차 연구실과 접촉해 무인차 대회를 준비해왔다.

 양웅철 현대기아차 사장은 각 대학 무인자동차 연구진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무인자동차 기술수준이 예상 외로 높은데 고무됐으며 무인차 대회를 매년 정례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대기업이 무인주행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 정상을 목표로 칼을 빼들었다는 확실한 신호인 셈이다.

 ◇무인자동차 대회 어떻게 치러지나=국내 최초의 무인자동차 대회는 미 국방부가 앞서 실시했던 무인차 대회규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우선 참가자격은 국내 대학,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로 한정된다. 현대기아차는 엄격한 실사과정을 거쳐 오는 10월까지 무인차 개발 능력이 인정되는 대학팀 10여곳을 선발할 예정이다.

 경기운영에 필요한 지원규모와 세부규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각 참가팀에 자사 브랜드 차량을 한 대씩 제공하고 개조비용 7000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무인차의 주행성능은 값비싼 고성능 센서, 카메라를 많이 장착하는 팀이 아무래도 더 유리하다. 각 참가팀은 외부 기업 스폰서를 추가로 확보해 더 많은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이 허용된다.

 무인차량은 본선대회에서 총 3.9㎞ 코스에 설치된 다양한 장애물과 주변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하면서 30분 내로 통과해야 합격으로 간주된다. 주최 측은 대회 직전에 주행코스의 좌표가 입력된 전자지도를 각 팀에 제공한다. 주행코스는 비포장도로와 시내주행을 가정한 장애물이 적절히 혼합돼 있다.

 무인자동차는 혼자서 터널을 통과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차해야 한다. 도로에 있는 정지차량, 건초더미와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매우 좁은 코너길도 빠져나가야 한다. 따라서 베라크루즈 같은 대형 SUV보다 회전반경이 작은 i30가 더 유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도록 모든 무인차량에는 즉시 작동을 멈추는 비상정지 버튼이 장착된다. 우승팀에 상금 1억원이 지급되며 처음 열리는 대회인만큼 무인차가 통과할 코스별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을 전망이다.

 무인차대회의 한 관계자는 “무인차 기술저변을 확대하려면 우선 많은 참가팀이 나와야 한다. 난이도를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서 목적지를 혼자 찾아가는 무인차를 실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인차 대회가 열릴 장소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인근의 오프로드 자동차 시험장이 유력하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두 번째로 무인차 대회를 개최하는 배경은 미래 자동차시장의 주도권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무인자동차 대회에서 쏟아지는 생생한 기술자료는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차세대 신차 개발에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또 대학의 우수인재를 발굴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한국 자동차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홍보효과도 기대된다.

 ◇미국의 무인차 대회와 그 성과=미국의 무인자동차 기술은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됐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 수송부대는 매복공격으로 적잖은 인명피해를 본 바 있다. 나중에 전쟁영웅으로 조작된 사실이 밝혀진 제시카 린치 일병도 수송트럭을 타다가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혀 봉변을 당했다.

 항상 물량전을 치러온 미군으로선 전투물자의 안정적 보급이 중요한 문제다. 미 국방부는 전쟁터에서 미군 병사의 희생을 줄이고자 2015년까지 미국 육군 차량의 30%를 무인화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 2004년 학계와 민간 기업들의 선도기술을 이용해 운전자가 필요 없는 로봇차량이 사막을 내달리는 그랜드 챌린지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제1회 대회에서 코스를 제 시간에 완주한 팀은 하나도 없었지만 두 번째 대회에서는 다섯 대의 로봇차량이 완주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무인주행기술을 과시했다. 당시 스탠퍼드대학 팀이 제작한 로봇차량 ‘스탠리’는 212㎞를 6시간 53분 만에 완주해 우승상금 200만달러를 타는 영광을 누렸다.

 미 국방부는 예상보다 빨리 나타난 성과에 크게 고무됐다.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가 GPS신호와 광학센서만으로 험난한 사막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길을 찾아낸 것은 전쟁터에도 충분히 로봇차량을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그랜드 챌린지는 목표한 바를 이뤘고 대회는 완전히 끝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만이 독보적인 무인자동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 대한 여타 국가의 경계심을 풀려는 연막작전에 불과했다. 미 국방부는 이미 혼잡한 시가전 상황에 투입할 수 있는 도심용 로봇자동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국 로봇연구팀들에 새로운 당근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DARPA는 2007년 캘리포니아의 폐쇄된 군용 공항에서 ‘도시에 도전하다’란 뜻의 어번 챌린지(Urban Challenge) 로봇자동차 경주대회를 개최했다. 경기에 참여한 로봇차량은 교차로에서 대기신호를 지키고 주변 교통 흐름에 따라 운행속도와 최단경로를 판단하는 등 실제 운전자와 비슷한 항법능력을 갖춰야 했다. 예상을 깨고 무려 6개 팀이 가상으로 도심 90㎞ 구간을 완주해냈다.

 이제 전쟁터에서 혼자 전쟁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군용차량의 등장은 시간문제로 예측된다. 복잡한 도심의 교통흐름까지 돌파하는 무인차량은 민간분야로 전파돼 운전자의 안전을 돕고 교통사고를 줄이는 첨단 보조장치로 진가를 발휘할 전망이다. 지금 미국 자동차 산업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지만 그들의 독보적인 무인주행기술은 제2의 부흥기를 예고하고 있다.

◆무인차 대회의 미래

세계 두 번째로 개최되는 무인차 대회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높이고 첨단기술을 세계에 과시하는 행사로서 큰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무인주행기술은 21세기 자동차 시장의 향방을 좌우할 전략기술이다. 따라서 한국의 무인차 대회는 아시아 경쟁국들을 민감하게 자극할 전망이다.

 자존심이 강한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계도 유사한 무인차 대회를 개최할 것이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도 나름대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그랜드 챌린지는 군사목적의 자동차 대회였기에 외국팀의 참여가 엄격히 제한됐지만 한·중·일 3국이 민간차원에서 무인차 대회를 개최한다면 수년 내 국제대회로 격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시아 유수의 공대팀들이 개발한 무인자동차 수십대가 자국 기업의 로고를 붙이고 거친 고비사막이나 몽골 초원을 질주하는 장쾌한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시아에서 열리는 무인자동차 대회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 레이스인 파리-다카랠리에 버금가는 국제적 이벤트로 성장할 수도 있다.

 지난 20세기 자동차 대회는 엄청난 스피드와 내구성으로 승부를 겨뤘지만 21세기 자동차 대회는 다른 차원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무인차 대회에서 축적된 기술역량은 결국 평범한 운전자에게 이득을 주게 된다. 버튼 하나로 비좁은 골목길에 저절로 주차하거나 웬만한 접촉사고는 예방해주는 첨단 자동차 옵션들이 한 10년 후에는 에어백, ABS처럼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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