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 열풍이다. ‘똑딱이’로 불리는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가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작가와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DSLR’ 카메라를 이용하는 계층도 학생과 직장인에서 머리가 허연 중년 남성, 주부를 포함한 여성까지 가세했다. 전문가들이 늘어나면서 카메라 시장도 마케팅·프로모션 중심에서 점차 제품·기술 중심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추억을 찍는다는 ‘문화 코드’에서 기술이 고객과 시장을 만든다는 ‘기술 아이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전자신문은 디지털 카메라 브랜드와 진화 역사에서 최신 기술·표준·제품 현황, 카메라 활용법까지 디지털 카메라 A에서 Z까지를 집중 조명한다.
지난 24일 동작대교. 장마 후 모처럼 햇볕이 따가웠던 이날 저녁 무렵, 한강 줄기를 따라 탁 트인 시야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이 그만이었다. 카메라 마니아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묵직한 DSLR 카메라를 들고 삼삼오오 동작대교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얼추 30명. 이들 대부분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었다. 취미 생활임을 감안하면 평일에 결코 적지 않은 수다.
# 디카, PC·휴대폰과 함께 ‘3대 필수품’ 부상
카메라 마니아가 급속하게 늘었다.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카메라는 이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생활의 일부로 바짝 다가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휴대폰·PC와 함께 갖고 싶은 ‘3대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사진 찍기’가 취미라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20·30대 여성까지 동참했다. 니콘코리아 측은 “남성과 여성 구매 고객 비중이 지난해 7 대 3에서 지금은 6 대 4까지 변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 보급 대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디지털 카메라는 ‘스틸’ 제품과 렌즈 교환이 가능한 DSLR 카메라를 합쳐 얼추 200만대. 콤팩트 카메라가 170만대, DSLR가 30만대가량 팔린 것으로 산업계는 추산했다. 2000년 10만대 규모의 시장을 감안하면 약 10년 만에 20배 성장했다. ‘1인 1 카메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1가구 1 카메라’ 시대는 도래한 셈이다.
카메라가 생활에 급속하게 파고든 데는 ‘디지털’의 힘이 컸다. 방일석 올림푸스한국 사장은 “간편하고 손쉽게 원하는 장면을 담고 지울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카메라 세상이 열렸다”고 말했다.
# 필름에서 디지털로 ‘세대 교체’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 대세로 굳어졌지만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간 것은 불과 10년 안팎이다. 물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카메라가 세상에 나온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이다. 디지털 1호는 지금부터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미국 코닥 엔지니어였던 스티스 세슨이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제품은 가로와 세로 100픽셀 정도를 촬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가격이 떨어지고 화질 면에서 필름 못지않은 디지털 제품이 나오면서 ‘카메라 세대 교체’를 선언했다.
필름 카메라가 세상에 나온 게 대략 1850년대께. 이후 1900년대 ‘롤(roll)’ 필름, 1936년 컬러 카메라가 나오면서 보급에 속도가 붙었다. 강동환 캐논코리아 사장은 “디지털 기술은 100년 동안 주도했던 필름 카메라 시대를 불과 10년 만에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최대 장점은 역시 재생·저장·삭제가 손쉽다는 점이다. 복사본을 쉽게 만들어 가격 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다. 감광 속도(ISO)도 강점이다. 화질도 뛰어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습기에 약해 전자회로 특성으로 극히 낮거나 높은 온도에서 오작동 가능성이 있다. 대용량 배터리가 필수적이며 이미지 센서 크기가 클수록 생산 단가도 높다.
# 카메라, ‘기술 속도전’ 시대로
결국 디지털 기술이 카메라 시장을 10년 만에 거머쥔 데는 편리함 이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기술의 진화 속도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기술 진보와 이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서로 상승 효과를 냈다. 디지털 기술은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0년 전 30만화소가 대부분이던 프리미엄 콤팩트 카메라는 지금 무려 50배가량 늘어난 1500만 화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200만화소면 남부럽지 않았던 DSLR 카메라 역시 10배인 2400만화소를 넘겼다. 최근에는 캠코더처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제품까지 나왔다. 캐논 ‘EOS 500D’ 모델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3년 보급형 DSLR 카메라 시대를 연 주인공인 ‘EOS 300D’의 증손자쯤 되는 모델이다. 이 제품은 DSLR 카메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동영상 촬영도 지원한다.
반면에 가격은 기술 발전에 반비례해 수직 낙하했다. 보급형 DSLR 카메라는 100만원이면 살 수 있다. 콤팩트 카메라도 10만원짜리 제품이 흔하다. 10년 전에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니콘이 자랑하는 플래그십 카메라 ‘F 시리즈’.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D’ 라인업을 추가했다. 1999년 태어난 첫 디지털 모델 ‘니콘 D1’은 274만 화소였지만 출시 가격은 65만엔이었다. 렌즈와 플래시를 합친 패키지를 구입하려면 1900만원을 내야 했다. 콤팩트 카메라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말에 나온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는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
# 카메라 시장 ‘2라운드’ 패권 돌입
산업계도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삼성이 시장 점유율 30%로 1위였고 캐논이 이를 위협하는 형국이었다. 콤팩트 카메라 시장은 삼성이 35%로 1위를, 이어 캐논·올림푸스·소니 등이 뒤따랐다. DSLR 시장에서는 캐논·니콘이 사실상 양분했다. 앞으로 최대 관전 포인트는 DSLR 카메라가 얼마나 콤팩트 시장을 점령할지와 DSLR의 성능과 콤팩트 카메라의 휴대성을 살린 ‘하이브리드’ 제품의 반격 여부다.
먼저 지난해 35∼45%대 점유율로 DSLR 시장을 양분한 캐논과 니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DSLR 양대산맥인 이들은 보급형 신제품을 2∼3개월 간격으로 출시하면서 시장 지배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제품과 마케팅·프로모션 모두 한 치 양보 없이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 DSLR 후발 업체 격인 삼성과 올림푸스도 하이브리드 제품을 내놓고 콤팩트 카메라의 영광을 DSLR 카메라 시장에서도 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박상진 삼성디지털이미징 대표는 “올해를 세계 최고 브랜드를 위해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장담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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