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에 대한 전문성 부재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하겠습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한국인터넷진흥원(NIDA),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을 통합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정통망법 시행에 따라 23일 공식 출범했다.
통합과정에서 떠오른 핫이슈는 원장으로 임명된 김희정(39) 전 국회의원. 적임자를 찾지 못해 무려 두 차례나 원장공모를 연기한 끝에 임명된 이가 IT에 대한 경험이 적고 당시 임신부였던 39살의 여성이었던 것이다. 과연 국가 인터넷진흥정책을 감당할 만한 역량이 되는 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
취임하자마자 출산휴가를 떠났을 때 발생할 업무 공백은 어떻게 메꿀 것인지, IT에 대한 전문성을 보강할 방법은 무엇인지,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단장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등이다.
이 같은 지적에 김 원장은 자신의 약점을 감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세간의 우려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출산휴가 없이 바로 직무에 돌입했다. 취임 첫날인 23일부터 구 한국정보보호진흥원·한국인터넷진흥원·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을 직접 돌며 현장을 챙기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달 22일 한국인터넷진흥원장으로 공식 임명됐을 때 산후조리 중이었는데 취임준비는 하셨나요.
▲출산한 지 일주일이 체 안 됐을 때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원 규정상 현장으로 갈 수 없어 통합인터넷진흥원 설립 위원회 측과 e메일, 전화를 주고 받으며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퀵서비스로 온 서류와 책을 읽었고,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검색하며 현장 감각을 익혔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마저도 무리라고 말렸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시절에 기른 체력이 바탕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과거 17대 국회 과기정위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전문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힘들지 않았습니다.
-IT에 대한 전문성 부족, 39살이라는 젊은 나이 등 세간의 우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인정합니다. ‘소통’으로 약점을 보완하겠습니다. 외부에서 원장을 공모한 이유는 CTO(최고 기술 책임자)가 아닌 CEO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지식은 부족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IT의 발전상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체험한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국민들이 KISA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용자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바라보겠습니다. 전문가 풀도 적극 활용하겠습니다.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제 젊음도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강점이 될 것입니다.
-너무 원론적인 것 아닌가요. 달라지는 게 뭡니까.
▲중요한 것은 KISA가 국민과 통할 수 있는 ‘현장 중심형’ 조직으로 개혁한다는 것입니다. 그간 KISA는 방통위, 행안부, 지경부를 지원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뒀습니다. 이번 DDoS 대란 때 우리는 이들의 요구에 충실히 응대하는 조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가 누구를 지원하느냐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어떤 인터넷·정보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하죠. 때로는 상위기관과 부딪힐 수 있겠지만, 과거처럼 갑과을의 관계가 아닌 합리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키겠습니다. 국회의원 경력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포괄적으로 정부부처 예산 집행 등 총론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이죠. 대국민서비스에 꼭 필요한 예산, 인력에 대해서는 정부에 적극 요구하겠습니다.
김 원장은 인터뷰 내내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강조했다. 4본부 1센터 7단 39팀 체제의 거대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소통으로 융합하는 게 필수적이라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장 공모 심사 때 김 원장을 가장 괴롭혔던 질문 역시 세간의 걱정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KISA출범식에 참석한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도 “원장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과연 30대의 여성이 이 복잡다기한 조직을 이끌고 관철시켜서 설립목적에 맞는 성과를 거둘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그러나 고민 끝에 김원장이 17대 국회 과기정위에서 4년연속 국감우수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은 물론 결혼 후 일과 삶 모두에 빈틈없이 일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해 최종 낙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김 원장처럼 여권과 교감이 있는 인사가 있어야 KISA를 외풍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실제로 김 원장이 KISA의 지향점을 ‘지원기관’이 아니라 ‘국민’이라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녀는 IT업계에 팽배한 ‘홀대론’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현 정부와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현 정부가 IT를 홀대해 IT종사자의 사기가 다소 저하됐습니다. 어떻게 해결하실건지요.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정책의 핵심이 IT임을 끊임없이 알리고 설득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IT가 녹아있습니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예로 들겠습니다. 에너지 절감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지능형전력망은 IT와 융합한 녹색정책의 대표적 사례죠. 건전한 인터넷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녹색정책입니다. 이번 DDoS공격과 같은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보호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이익을 정량적으로 제시하겠습니다. 기업의 비용절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도 마찬가지입니다.
IT는 결코 정치적 변수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IT의 경제적 효과를 명확한 사실로 제시한다면 정부의 관심도 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통합기관의 앞날에 산적한 현안이 많습니다. 조직원들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인터넷 진흥으로 인한 역기능을 해소하는 것이 정보보호진흥입니다. 두 기관은 상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찰떡궁합인 셈이죠. 화학적으로 결합하려면 조직원들에게 고용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번 DDoS대란으로 정보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KISA 조직을 양적,질적으로 늘리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또 본부장직을 신설해 인사적체현상을 해소하겠습니다. KISA를 인터넷·정보보호인력 양성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겠습니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쓸만한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KISA 구성원들이 전문가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단순한 일을 각도를 달리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달인이 됩니다. 진흥원 식구 개개인이 맡은 분야의 달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원장으로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너지효과를 충분히 극대화해 대한민국이 인터넷 인프라는 물론 인터넷의 역기능을 해결할 수 있는 정보보호까지 철저한 진정한 IT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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