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사상 최대 과징금에도 지배력 여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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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이 시장 지배력 남용에 따른 사상 최대 과징금과 시정 명령을 받았지만 국내 CDMA모뎀칩 시장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원천 특허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 99.4%라는 철옹성을 구축한 퀄컴의 지배력이 흔들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되레 퀄컴이 공급할 칩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위가 퀄컴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에 제동을 걸었지만, 국내 업계가 얻을 실익은 별로 없다는 비판이 일부 제기되는 이유다.

◇‘대체재가 없다’=공정위는 퀄컴이 로열티 차별 부과와 조건부 리베이트 지급에 의해 대만 비아(VIA)와 우리나라 이오넥스 등 퀄컴 경쟁사업자의 국내 시장 진출이 제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정 조치로 신규 사업자의 진입 및 가격 경쟁 촉진이 유발되고 휴대폰 제조사는 구입단가 인하 및 부품 선택의 다양성 확대로 세계시장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퀄컴 제품을 대체할 칩이 시장에 없다. 공정위가 언급한 대만 비아는 지난 2007년 CDMA칩 생산을 중단했다. 벤처기업이던 이오넥스는 최근 CDMA 베이스 밴드 기술을 대만 미디어텍에 헐값으로 넘겼다.
퀄컴이 26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물게 돼 단기적인 실적엔 영향을 받겠지만 지배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휴대폰 업체 퀄컴 반응 예의 주시=전 세계 CDMA 휴대폰 시장의 43%(2009년 1분기)를 점유한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업계는 퀄컴의 후속 대응을 주시했다. 후속 조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 측이 이미 공정위 과징금 부과 이후 후속조치에 대해 검토를 끝마친 것으로 안다”며 “끼워팔기 금지, 로열티 캡(상한선) 조정 등에 따라 업체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퀄컴과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CDMA 상용화 및 세계 시장 확대를 위해 파트너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퀄컴의 후속 조치에 따라 대응 방향을 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직 퀄컴의 입장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파장을 예단하기는 이르다”며 “퀄컴과의 관계가 어쩔수 없이 부품을 수급해야 하는 관계가 아닌 파트너 관계였다는 점에서 후속 조치와 상황 변화를 예의 주시한다”고 말했다.

휴대폰 업계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칩 가격 상승에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퀄컴이 시정명령을 따를 경우 칩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퀄컴측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칩 구매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준 것과 퀄컴 칩을 사용할 때 로열티를 할인해 준 것이 한국 휴대폰의 가격 경쟁력 제고에 기여했다.
향후 한국 휴대폰 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입지 확대될까=시스템반도체 업계는 공정위의 조치를 환영했다. 국내외 모뎀칩 및 RF칩 시장에서 퀄컴에 의해 막힌 신규 사업자의 진입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퀄컴이 지난 10여 년 간 우리나라 휴대폰 업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차세대 이동통신 솔루션을 개발하고 단말기 및 중계기 수출 산업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 그늘이 짙다. 국내 휴대폰·칩 기업을 퀄컴에 종속시키는 기형 구조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ETRI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CDMA칩을 개발해 1996년 시연회까지 열고 삼성·LG 등 휴대폰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퀄컴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개입해 결과적으로 상용화에 실패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퀄컴을 대신할 국내 모뎀칩 회사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주요 휴대폰 업체들이 퀄컴 이외의 칩에 눈을 돌릴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공정위 잇단 제재 왜?

지난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글로벌 IT업체로는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세계 최대의 공룡 IT기업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제재였다.

위법행위는 PC서버 운용체계와 미디어 서버 프로그램 결합판매, PC 운용체계와 윈도 미디어플레이어 결합판매, PC 운용체계와 메신저 프로그램 결합판매 등이다. 부과받은 과징금은 324억4900만원이다. MS의 결합판매는 세계적으로 문제가 돼 미국, EU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제재를 받은 것이다.

과징금 외에 PC 서버 운용체계에서 미디어서버 프로그램 분리 등을 포함한 위법행위의 시정조치가 이뤄졌다. 또 이행감시기구의 설치 및 운영도 부가적으로 실시됐다.

공정위는 지난해 인텔에 266억16000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인텔은 한국 PC 제조업체들에 경쟁사인 AMD의 CPU 구매를 중단하고 자사 제품을 사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인텔은 한국 이외에 지난 5월 EU로부터 리베이트 지급과 증거 은닉 등의 혐의로 사상 최대인 10억60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도 인텔의 독점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는 국내 IT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는 세계적 업체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제재로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원활해지고 가격 경쟁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이 세계 각국의 글로벌 IT기업 독점적 시장지배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가 연이어 이뤄졌다. 시장질서와 공정거래 유지를 위한 조치지만 자국 산업보호를 위한 속내도 숨어 있다.

공정위 서동원 부위원장은 “퀄컴에 대한 제재는 MS와 인텔에 이어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경쟁제한 행위에 대해 예외 없이 엄정한 법 집행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