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저작권법` 새로운 고민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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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어 달 전 중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저작권법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늘 만나면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나누던 사이인지라 이런 진지한(?) 주제는 상당히 뜻밖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미니홈피에 드라마 등을 가끔 올려놓는데 저작권법에 걸리냐” “가사 적어서 올려놓는 것도 안 된다는데 맞는 말이냐” “대체 인터넷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등등 질문과 반응은 다양했다. 평생 법이라고는 고민할 일 없는 평범한 친구들도 저작권법을 입에 담는 걸 보면서 ‘이제 저작권법이 일반인들의 일상에 들어왔구나’ 생각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개정 저작권법의 효력이 23일 개시됐다. 이미 몇 달 전부터 포털 게시판이나 카페, 블로그에 들어가면 개정 저작권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저작권이 뭔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수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저작권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문화산업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인 신호다. 변화는 인지(認知)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개정 저작권법 조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저작권 보호라는 전통적인 가치와 디지털 트렌드 반영이라는 새 미션을 접목하기 위한 고민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렇다고 개정 저작권법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논란의 중심이 된 133조 2의 삼진아웃제는 초기 각인효과는 강할지 몰라도 그 과도함으로 인해 후유증을 가져올 소지가 많다. 불법 저작물을 유통했다고 해서 계정을 차단하는 ‘처분’ 자체도 논란이지만(프랑스에서는 지난 6월 ‘사법부가 판단할 내용을 행정부가 재단할 수 없다’며 헌법위원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로 인해 그 계정으로 해온 다른 개인 활동까지 차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불법 콘텐츠를 유통했다고 해서 친목회 카페 회장을 맡아온 것이나 온라인 기부를 해온 다른 활동까지 중지하겠다는 것은 행정규제의 남용이다.

 31조 도서관 등에서의 이용 조항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도서관 등은 컴퓨터를 통해 이용자가 열람할 수 있도록 보관된 도서 등을 복제하거나 전송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이용자 수는 그 도서관 등에서 보관하고 있거나 이용 허락을 받은 그 도서 등의 부수를 초과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하면 해당 도서관에 3권의 책이 구비돼 있으면 컴퓨터에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사람도 3명까지 제한한다는 말이다. 시·공간 제약없이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정보를, 더욱 효율적으로 접할 수 있는 디지털 문명은 적어도 이 조항에서는 의미를 잃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1957년 1월 공포돼 1986년과 2006년 2번의 전부 개정과 15번의 부분 개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몇 개의 조항으로 저작권법의 전체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 저작권법의 기본 틀은 오프라인 인쇄와 출판이 보편적인 시대, 콘텐츠 생산과 유통과 소비가 단선적이고 순차적이었던 시대의 그것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용자는 이미 디지털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활보하는데 저작권법은 아직도 좁은 아날로그 골목에 지키고 서서 통행료를 받아 챙기는 형국이다. 더욱이 저작권자와 이용자가 뚜렷하게 구분됐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이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혼재될 것이다. 누구든 만들고, 누구든 유통하고, 누구든 소비하는 새로운 시대의 저작권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야 하지 않을까.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시작된다고 했다.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된 첫날, 저작권법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화부에서도 이를 ‘알고는 있다’는 것이다.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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