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길눈은 밝은 편인데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요즘은 그곳을 어떻게 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운전자에게 필수 품목으로 자리 잡은 길 안내 단말기 내비게이션이 오히려 ‘디지털 길치(?)’를 양산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불안해하거나 아예 운전 자체를 못 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직장인 정현영씨(33)는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찾았다.
정씨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안내하는 대로 운전하다 보니 내비게이션은 남들보다 잘 다루는 편인데 문제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 자체를 못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용식씨(37)는 “요즘 내비게이션은 주유소와 은행은 물론이고 과속감시 카메라 위치까지 알려줘 아는 길을 갈 때도 일부러 켜둔다”며 “그러다 보니 이제는 과거 알았던 길도 헷갈리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운전을 자주 하면서 한시라도 곁에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중독형도 늘고 있다.
장재호 파인디지털 MS팀 차장은 “내비게이션 수리를 맡긴 고객은 불과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전화로 제품 수리 여부를 확인한다”며 “이들 고객은 한시라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위한 만능기계는 아니다. 갑자기 신호가 끊어지거나 엉뚱한 길 안내로 운전자들의 진땀을 빼게 하는 일도 적지 않다.
우선 제공되는 전자지도가 실제 도로와 다른 때가 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은 두 달에 한 번씩 지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은 최소 2∼3개월에 한 번씩 업그레이드로 지도 정보 정정과 프로그램 패치 등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소홀히 하면 내비게이션은 가끔 바다로 들어서거나 막힌 길로 계속 가라는 등의 황당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또 내비게이션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오류로 GPS 수신 불량이 꼽힌다. 여기에 빌딩이 밀집된 곳 등 음영 지역에서는 위성신호가 끊기거나 신호가 튀는 문제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DMB가 결합된 내비게이션은 운전 중인 운전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터치형은 운전 중 운전자의 오른손 사용을 요구, 운전 위험요인이 된다.
내비게이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이에 집중한 나머지 운전자들이 각종 도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돌발 상황의 대처도 늦어져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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