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포스코 문서관리혁신 사례

 “시스템 오픈 D-30일. 자신의 PC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월 30일부터 작성하는 모든 문서는 중앙 서버에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바탕화면이나 하드디스크에 저장이 되지 않습니다. 청결단계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9월 말 포스코 문서관리혁신팀이 전 직원에게 보낸 공지사항이다. 새로 구축한 문서관리혁신 시스템을 운용하기 한 달 전이었다. 포스코는 사무부문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혁신을 고도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판단, 지난해 대대적인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순히 문서를 저장하고 잘 보관하는 수준의 문서관리가 아니라, 최종사용자(문서기안자) 환경에서 중복된 문서를 없애고 문서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사에서 생성되는 모든 문서를 서버에서 단일하게 관리하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다.

 포스코는 2001년부터 프로세스혁신(PI)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2005년 말까지 진행된 PI 2기까지 포스코는 전사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IT인프라를 고도화하는 활동에 치중했다. 이후 포스코는 2006년부터 ‘글로벌 포스코’를 기치로 내걸고 혁신 3기(PI 2기가 끝난 후부터 PI라는 개념을 빼고 혁신이라고 지칭함) 활동을 시작했다. 혁신 3기는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조직 역량을 강화하고, 혁신활동을 고도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생산현장에 적합하게 설계된 퀵식스시그마(QSS)를 적용하고, 해외 현장의 프로세스 혁신을 가속화하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었다. 또 상대적으로 사무부문의 혁신 내재화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문서관리 혁신 작업이 혁신 3기 중반쯤에 도입됐다. 결국 문서관리 혁신 활동은 혁신 3기의 핵심 과제이자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혁신활동을 내재화하는 화룡점정의 성격을 지니게 됐다.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가 여느 문서관리시스템과 다른 점은 모든 문서 처리 프로세스에 중앙집중적인 ‘인벤토리’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이는 문서를 통한 정보의 생산과 관리, 공유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 포스코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는 그 범위와 변화의 깊이 측면에서 국내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상대 포스코 정보서비스그룹장은 “볼트와 너트와 같은 자재는 현장에서 어떻게 반입되고 소멸되는지 모든 과정이 관리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문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면서 “문서가 생성, 저장되고 활용, 폐기되는 모든 단계를 표준화해 중앙 관리함으로써 업무 방식을 혁신하고 진정한 협업 환경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기존 EDMS의 한계를 넘어라=포스코의 연간 문서 생산량은 약 2억1600만페이지. 문서 건수를 기준으로 하면 2007년 말 현재 연간 생산량이 약 9600만건에 달했다. 또 전체 포스코 직원들의 개인 PC를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1만6000건(9만6000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문서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필요한 문서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또 많은 문서를 본인 외에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특히 해마다 생성되고 증가하는 문서의 94%는 개인용 PC에 저장되는 상황이어서 공유와 협업을 확산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지난 2007년 10월 전 포스코 연구원 두 명이 핵심 철강기술을 중국 경쟁사로 유출하는 정보 보안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포스코 측은 향후 5년간 약 2조8000억원의 손실을 전망했다. 내부 관계자들은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PC 자체에 문서를 저장하는 환경에서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포스코는 정보 자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공유, 활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전사적 콘텐츠 모델 확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박현수 포스코 정보서비스그룹 팀장은 “기존 EDMS는 단순하게 문서를 저장하고 보관하는 기능만 했고 프로세스가 상당히 복잡했기 때문에 활용률이 저조했다”며 “문서를 보관하고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업무를 혁신하는 차원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업무, 시스템 변화를 통한 혁신=포스코가 추진한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업무 프로세스가 필요했다. 더 이상 개인 PC에 문서를 저장할 수 없고, 작업한 모든 문서가 자동으로 중앙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였지만 막상 D데이를 앞두고 직원들의 동요가 적지 않았다. 상당수 직원은 청천벽력 같은 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해온 업무 프로세스를 완전히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제부터 생성되는 모든 문서를 회사의 자산으로 관리한다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

박현수 팀장은 “문서를 중앙 서버로 모은다고 했을 때 많은 직원이 지금 잘 쓰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또 어렵게 자료를 수집해서 만든 내 자료를 왜 다른 직원들과 강제로 공유해야 하는지에 불만이 많았다”면서 “생각보다 거부감이 많았지만 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직원들을 설득해 나갔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부서별로 필요 없는 문서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단계별로 진행해나갔다. 그 결과 실제로 80% 정도가 없어도 되는 문서라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어떤 문서는 최다 108개의 버전이 존재하는 등 중복 저장의 폐해가 심각했다. 이에 포스코는 ‘과감한 버리기’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전체 문서 중 약 6%에 불과했던 중앙관리 비율이, 문서관리 혁신을 시작한 2008년에 90%대로 올라갔다. 현재는 이 비율이 무려 98%가 넘는다.

또 포스코는 문서 작성 시점에 프로파일 항목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문서별 보안 등급을 지정하고 보존 기간과 작성·수정 권한, 의사결정 권한, 열람권한 등을 작성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10∼20개의 항목을 기재하도록 하는 데 비해 포스코는 직원들이 보다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항목을 반으로 줄였다.

업무 프로세스에만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스템적으로도 변화가 많았다. 포스코는 기존 결재 문서 중심의 EDMS를 통합, 흡수해 새로운 개념의 문서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은 EMC의 기업 콘텐츠관리(ECM) 솔루션을 기반으로 ‘통합 리포지토리’를 이용해 문서 통합관리 프로세스를 구현했다. 전사적으로 모든 문서는 하나의 진본만 통합 리포지토리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원본만 보관하고 각 단위시스템에는 링크된 URL을 제공함으로써 정보의 접근 경로를 단일화했다.

△캐비닛이 사라지다=포스코 조직은 한 번 결정된 사안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특징이 있다. 총론을 공감하고 필요성을 인지하기까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서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포스코의 조직역량은 이번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포스코는 문서 보안을 위해 개인 PC의 문서 저장기능을 강제 폐지하고, 문서 저장 시 자동으로 중앙 서버에 저장되도록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변경했다. 또 사람이 바뀌어도 문서는 업무권한에 따라 유지되도록 업무 체계 자체를 바꿨다.

이로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업무 환경이 펼쳐졌다. 이제 포스코 사무실 내에서 캐비닛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법적으로 보관해야 하는 문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문서가 중앙 서버에서 관리되면서 별도의 캐비닛이 유명무실해졌다. 진정한 종이 없는 사무실이 현실화된 것이다.

또 지금까지 담당자가 없으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서 활용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담당자가 없어도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에 한해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시스템 가동 후 실제로 문서 활용률도 대폭 향상됐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2만5000건 수준에 머물던 활용문서가 올해 2월에는 6.7배 높아진 16만8000건을 기록한 것이 단적인 예다.

 △정보보호 체계 강화= 포스코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던 부분도 해결했다. 그동안 개인별로 문서를 사유화하면서 정보 유출과 유실 위험이 컸다. 하지만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문서흐름을 제어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보보호 체계가 한층 강화됐다.

이인봉 포스코 상무(CIO)는 “콘텐츠의 중앙화로 정보자산의 외부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협업 기반의 통합형 업무 환경을 구현했다”며 “무엇보다 직원들 스스로가 공유한 문서는 누구든지 볼 수 있다고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보호’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 이뤄진 대규모 조직 개편에서도 문서관리시스템이 톡톡히 한몫했다. 147개의 부서 조직이 132개 조직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수인계 과정을 처리해 줬다. 문서의 소유권 변경만으로 업무 연속성을 보장받은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1000만건의 문서 중에서 350만건의 소유자가 바뀌었다.

이처럼 포스크의 문서관리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나타난 가시적인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동시 사용자 6000여명을 기준으로, 500만건 이상의 문서, 21개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EMC 다큐멘텀’ 솔루션으로 통합한 것은 EMC로서도 세계 최대 규모였다.

 △변화관리가 중요=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포스코 직원들을 일컬어 포스코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총 맞을 짓을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과 불만이 얼마나 높았을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많은 기업이 포스코의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려 하지만 막상 자사에 적용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담당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업의 변화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시스템 구축 기긴만큼이나 현업 직원들을 이해시키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상대 그룹장은 “특히 문서분류체계를 조직별로, 전사적으로 표준에 맞게끔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이를 통해 표준 체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인봉 상무는 “개인이 업무와 관련해 생성한 문서는 모두 회사의 자산이라는 점을 공감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그동안 다양한 PI 활동을 수행하면서 혁신과 변화의 수용도가 어느 기업보다도 높았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실제로 프로젝트 초반에 불만을 표했던 직원들로부터 지금은 오히려 개선 요구사항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기능들을 더 추가해 달라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을 ‘문서의 날’로 정해 전사적으로 문서의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 등 5S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은 각 부서 팀장의 관리하에 한 달간 생성된 문서들을 점검하고 분류 체계를 확인한다. 현재는 문서관리 활동 중 습관화 단계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변화관리를 하지 않으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포스코는 문서에 인벤토리 개념과 프로세스를 철저하게 적용함으로써 순조롭게 변화관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인봉 상무는 “자재관리처럼 문서관리도 인벤토리화한 것이 성공요인”이라며 “이와 함께 지속적인 습관화로 일, 학습, 혁신을 일체화했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표> 문서관리 혁신 프로젝트의 성공요인·애로 사항

<성공요인>

- 혁신 목표와 기대효과 등에 대한 임직원의 수용 마인드

-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한다는 도전정신

-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IT인프라 구축

<애로사항>

- 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접근방식

- 문서관리 혁신 방법론과 철저한 변화관리

- 온라인 환경의 복잡한 시스템 아키텍처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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