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에스크로’ 먹튀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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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에 사는 K씨는 지난달 황당한 사건을 경험했다. A사이트에서 노트북PC를 주문했다. 판매자가 홍콩에서 보내는 물품이라 7∼10일 걸린다고 한 것이 께름칙했지만 ‘에스크로’를 믿고 주문했다. 그러나 제품을 주문한 지 열흘이 넘어도 물건이 도착하지 않아 중개회사에 신고했지만, 제품 대금은 판매자에게 송금된 후였다. 판매자가 엉뚱한 곳에 택배를 보낸 후 ‘자동정산’으로 돈을 수령했다. K씨는 소비자가 제품을 받지도 않았는데, 중개회사가 제품 대금을 지급해버렸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에스크로 시스템을 뚫고 소비자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가는 ‘먹튀’ 판매자들이 생기고 있어 오픈마켓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판매자가 현금거래를 유도해 돈을 송금받고 사라지는 사례는 있었지만, 에스크로하에서 사기 사건이 발생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인터넷몰에는 소비자가 물건을 주문하면 대금을 중개회사 측이 맡아 두었다가 배송이 정상적으로 완료되면 판매자에게 입금하는 에스크로제를 시행하고 있다. 소비자가 물건을 받지 못했거나 반품을 요구하면 중개회사는 즉시 환불해 줄 수 있어 사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픈마켓의 짧은 자동정산 주기를 악용해 에스크로를 무력화시키는 사기 판매자들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오픈마켓의 허술한 관리, 택배사들의 묻지마 배송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엉뚱한 곳에 택배를 보낸 후 시간을 끌다가 자동정산으로 돈을 챙기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일부 오픈마켓사의 배송확인 시스템에서 문제점이 밝혀졌다. 일부 오픈마켓사는 소비자의 택배 수령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택배사들의 허술한 배송 시스템도 피해를 야기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대부분 택배사 직원은 수령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짧은 자동정산일도 문제로 지적됐다. 오픈마켓사들은 제품을 구입한 후 구매확인을 하지 않는 소비자 때문에 자동정산 시스템을 이용한다. 원래 소비자가 구매확인을 중개회사 측에 알려야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가 귀찮다는 이유로 구매확인을 잘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오픈마켓사들은 택배배송이 확인된 날 이후 7∼15일이 지나면 대금을 지급한다. 몇몇 회사는 자동정산일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G마켓이 판매자 등급에 따라 7∼14일, 옥션이 8일, 인터파크가 15일, 11번가가 7일을 자동정산일로 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매자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면 해당 정보를 오픈마켓에서 엑셀파일로 다운받아 택배사에 넘긴다”며 “현 시스템에서 판매자가 얼마든지 배송지를 조작할 수 있고, 택배사들도 수령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정산을 악용한 ‘먹튀’가 가능하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문제를 놓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는 관계자는 “에스크로 시행령에 자동정산일을 3일 이상으로 규정해 오픈마켓사의 자동정산 주기가 짧아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며 “관련 대책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에스크로(Escrow)란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3자가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 중개를 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다. 원래 법률용어로 ‘조건부 양도증서’를 의미하며 부동산 거래 등에 쓰였다. 그러나 최근 전자상거래에서 거래대금을 제3자에게 맡긴 뒤 물품 배송을 확인하고,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